[Christian Times] 2022/04/14 우크라 전쟁 50일… 계속되는 피란, 그리고 떠날 수 없는 이들

지난 주 5일부터 7일까지 2박 3일 간 몰도바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그들을 돕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취재했다. 팔랑카 국경과 수도 키시나우의 난민센터에서 우크라이나를 떠나온지 2~3일 밖에 되지 않은 난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슴 아픈 현지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4월 1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0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날 기준 우크라이나를 떠난 난민이 460만 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몰도바 팔랑카 국경. 조카를 데리고 피란을 떠나온 한 여성이 자원봉사자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팔랑카 국경에서 만난 난민들
폭격이 거세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그곳에서 50km 정도 떨어져 있는 팔랑카 국경으로 목숨을 걸고 떠나온 피란민들을 만났다. 전쟁 발발 후 한때는 하루에 수천 명의 피란민들이 줄을 지어 왔지만, 지금은 하루 수백 명으로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이다. 전쟁 시작 때만 해도 ‘며칠이면 끝나겠지’란 기대와 함께 남았던 사람, 남편과 아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할머니, 한 달 넘게 사이렌과 폭격 속에 방공호에서 생활하다 탈출나온 소녀, 위급한 상황에서 조카들을 데리고 탈출한 이모 등 하나 같이 가슴 아픈 사연들을 품고 있었다.

쫓기어 알리야하는 우크라이나 유대인들
우크라이나에는 25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이스라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활발하게 구호 단체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보내 유대인 구출 작전을 펼쳐왔다. 

키시나우 난민시설. 이스라엘 단체들이 연합해 인쇄소를 임대해 난민시설을 마련했다. 머물고 있는 난민 대부분이 노인, 여성, 아이들이다.

이번에 방문한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의 한 난민시설도 알리야를 원하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로 가기 희망하는 난민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도록 마련된 시설이다. 유대기구와 이스라엘의 여러 구호 단체들이 함께 책을 찍어내는 인쇄소를 임대해 임시 난민센터를 세웠다. 몰도바로 피란 온 난민들은 이곳에서 이스라엘로 가기 위한 서류들을 제출하고 이스라엘 정부의 결정을 기다린다. 난민들이 하루에 수천 명씩 몰릴 때에는 이곳에서 며칠씩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임시센터에 도착 후 서류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 이스라엘행 전세기를 타기까지 보통 1~3일이 걸린다.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난민 이리나 씨와 어머니. 더 일찍 알리야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고 있다.

난민시설에서 만난 유대인 이리나 씨는 어머니와 함께 하르키우에서 피란을 나왔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 생각하며 버텨보려 했지만, 계속되는 폭격에 도망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전부터 이스라엘로 알리야해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왔던 터라, 더 일찍 하지 않고 미뤄온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전쟁이 터지자 많은 유대인들이 피란을 위해 알리야를 결정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3,500여 명이 알리야를 했는데, 전쟁이 시작되고 2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만 명 정도가 알리야를 했다. 

체르니히우에서 피란을 떠나온 빅토르 씨. 유대인과 결혼해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들한테로 가기 위해 입국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 달 넘게 지하실과 화장실에 대피하는 삶을

폭격 속에도 떠날 수 없는 노약자들
같은 난민시설에서 만난 빅토르 씨는 체르니히우에서 피란온 난민으로, 유대인은 아니었다. 아들이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여성과 결혼해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어서, 사돈 부부와 함께 이스라엘로 향하는 중이었다. 한 달 동안 화장실과 지하실에 대피하는 삶을 반복하다 목숨을 걸고 피란길에 올랐다. 한 달 넘게 숨어 지내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죽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인터뷰 내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만난 난민들은 이리나, 빅토르 씨처럼 대부분 폭격이 거세지고 있는 하르키우, 체르니히우에서 피란온 노인들이었다. 이 두 도시는 마리우폴과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에서 가장 많은 시민 희생자가 나온 도시들로 전해지고 있다. 침공 후 40일이 지나서야 피란을 떠난 이유는 거동이 불편한 데다 도와줄 자녀가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침공 한 달이 넘어 피란을 떠나온 노인들. 거동이 불편해 피란 떠날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만 폭격이 거세지자 어쩔 수 없이 피란을 결심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직도 그곳에는 쉽사리 피란을 떠날 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남아있다. 러시아군이 길까지 봉쇄해 노약자들의 피란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몰도바인 자원봉사자들은 하나 같이 “이들이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더이상 먼 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듯 우리 코 앞에 닥친 현실이다.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리고 미래의 우리 믿는 자들 역시,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선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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