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Times] 2020/2/12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유엔 안보리서 미 중동평화구상안 거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1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이 제안한 중동평화구상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압바스 수반은 “현재의 동예루살렘 땅이 팔레스타인 수도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미 평화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충분한 이유”라고 하면서, 1967년 이전 국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압바스 수반의 유엔 성명 발표에 맞춰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거리로 나와 미국 평화구상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좌)과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우)

유엔 안보리 개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압바스 수반과 자리를 함께하며 미 중동평화구상안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올메르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은 양측이 직접 논의를 해야한다”면서 “압바스 수반이 팔레스타인 내에서 이스라엘과 논의를 시작할 의지가 있는 유일한 대표”라고 말했다. 압바스 수반도 “미국-러시아-유엔-유럽연합의 ‘중동평화 콰르텟(Quartet)’의 중재 하에 과거 올메르트 전 총리와 진행하던 평화 협상을 기초로 다시 논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전과 같은 레파토리의 이야기를 또다시 풀어놓은 압바스 수반 보다 이번 유엔 발표 이후 눈길을 끈 것은, 압바스 수반이 유엔 안보리에 트럼프 평화안을 거부한다는 결의안을 제출했다가 철회한 것이고, 이스라엘의 현 정부와 전혀 관련이 없는 전 국무총리 에후드 올메르트가 압바스와 함께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압바스 수반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철회는, 안보리에 제출하는 결의안 내용을 더 적합하게 수정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실제는 아랍 연합국들의 미지근한 반응과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감안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이란이라는 공통의 위협에 많은 수니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연대에 합류하며 관계를 완화시키고 있는 것이 눈으로 보여지는 시간이다. 

올메르트는 2006년에서 2008년까지 총리로 있다가, 비리 관련 수사가 시작되면서 사임했다. 그는 임기 동안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서안지구 면적 100%에 해당하는 영토와 동예루살렘을 주고, 올드시티는 국제 관할로 할 것”을 제안했었다. 2006년 3월부터 이 계획을 시행해 서안지구 정착촌에서 유대인들을 철수시키려 했지만 레바논 전쟁이 발발하면서 계획은 보류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실제 관할 영토 변화 (Source TheTower)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스라엘 정부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공식적으로 추진한 것’은 1993년에 노동당 잇작 라빈 총리가 체결한 오슬로 협정이 처음이다. ‘오슬로 협정’의 내용은 서안지구를 A, B, C 세 지역으로 나누고, 팔레스타인이 자치정부를 꾸려 A와 B지역을 통치할 수 있도록 하고, 단계적으로 서안지구 대부분의 땅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넘겨준다는 것이었다. 이후 어떤 정부가 세워지느냐에 따라 협정 진행과 중단이 반복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영역이 점차 늘어났다. (지도 참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실제 관할 영토 변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땅을 나누는 정치 지도자들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거나 끝이 좋지 않았다.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동의한 이츠하크 라빈은 1995년에 극우 단체에 의해 암살되었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고 서안지구 영토의 90%를 주는 것을 제안한 에후드 바락 총리는 2000년 2차 인티파다와 함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고, 2005년 가자지구 완전철수를 이끈 아리엘 샤론은 2006년 1월 뇌졸중으로 인해 코마 상태에 있다가 2014년에 사망했다. 

땅을 나누는 이번 중동 평화구상안을 검토할 앞으로의 4년의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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