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나가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가장 원했던 것 — ‘찟짓’

잊지 말라, 그것이 살 길이다—토라 포션 "쉘라크"

Share

▲ 유대인들의 기도 숄 4개의 끝자락에 연결된 술(‘찟짓’)   © 위키미디어 컴먼즈

 

토라 포션 “쉘라크”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로 기억된다. 열 명은 백성을 겁박하는 보고를 들고 돌아왔다. 거인들이 있다. 성벽은 높다. 우리는 그들 눈에 메뚜기에 불과하다. 그 밤, 이스라엘은 울었다. 탈무드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 밤을 기억하셨다. 아브 월 9일. 그날은 세대를 넘어 통곡의 날이 되었다. 한 번의 집단적 불신앙이 역사를 바꿔버렸다.

 

그러나 “쉘라크”는 정탐꾼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심판이 선포된 후, 사십 년 광야 유랑이 확정된 후 — 하나님은 모세에게 또 다른 명령을 주신다. 재앙으로 기억될 이 토라 포션의 끝자락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대대손손 옷자락 끝에 술을 만들어야 하고, 그 옷자락 술에는 청색 끈을 달아야 한다. 너희는 이 술을 볼 수 있게 달도록 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실천할 것이다. 그래야만 너희 생각대로 따라가거나 너희 눈에 좋은 대로 따라가지 아니할 것이고, 스스로 색욕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민수기 15:38-39)

 

왜 하필 토라 포션 맨 끝에 이 명령을 주셨을까? 왜 이 순간에?

 

11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랍비 주석가 라쉬(Rashi)는 답한다. “생각과 눈은 몸의 정탐꾼이다 — 죄를 짓게 하는 대리인이다.” 찟짓(ציצית) — 기도 숄이나 겉옷의 네 모서리에 다는 술로, 하나님의 계명을 날마다 몸으로 기억하게 하는 상징물이다. 찟짓 명령이 여기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앞선 죄에 대한 직접적인 처방이다. 정탐꾼들은 자신의 눈으로 결론지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갔다. 하나님의 약속 대신 자신의 분석을 신뢰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명하신다. 날마다 몸에 걸치는 물리적 기억장치를—’보아라. 네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네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 기억하라.’

 

정탐꾼들은 잊었다. 가나안의 성벽 앞에 서서 결론 내렸다: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 눈에도 메뚜기 같았다”고 그들은 고백했다. 하나님의 눈이 아닌 원수의 눈으로 자신을 보기를 선택했을 때 — 그들은 정말로 메뚜기가 되어버렸다.

 

랍비 툴리 바이스는 Israel365의 창립자이자, 『우주적 시온주의: 이스라엘과 열방을 위한 운동』(Universal Zionism: The Movement for Israel and the Nations)의 저자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유대 역사 속에 그 동일한 망각이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2023년 10월 7일 극적인 반전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수십 년간 이스라엘 사회의 많은 이들은 국가의 존재를 순전히 전략적·정치적 문제로만 다루었다. 더 깊은 정체성의 질문은 뒤로 밀렸다. 유대 국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이 질문들은 논쟁의 대상이 되거나, 종교 소수파의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10월 7일은 그 유예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병사들이 소집되어 전선으로 달려갔다. 그때 전선에서 가장 많이 요청된 물품은 음식도, 탄약도, 여벌의 군복도 아니었다. 찟짓이었다. 이스라엘 전역의 종교 유대인들이 밤을 새워 손으로 술을 꼬아, 위장색 군복에 직접 달았다. 영적 보호를 원한다며 찟짓을 요청한 세속 병사들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랍비 바이스는 말한다. 이 내면의 각성은 이스라엘의 보편적 사명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의 토대다. 내부의 빛이 꺼진 채로 열방의 빛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민족은 어느 누구에게도 사명을 전달할 수 없다.

스가랴의 예언은 말한다.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나라의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을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가겠소.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하신다는 말을 들었소.'” (스가랴 8:23)

 

그 환상 속에서 열방이 붙잡는 것은 유대인의 군사력도, 정치적 영향력도 아니다. 유대인 그 자신이다. 그의 정체성, 그의 언약, 영원한 것과 맺은 그의 가시적인 연결이다. 거기에 술이 없다면 — 아무도 붙잡을 수 없다.

정탐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었다. 그리고 한 세대가 광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10월 7일, 잠에서 깨어나 생존을 위해 목숨을 내건 이스라엘의 병사들은 잊기를 거부했다.

출처: 본 기고문은 Israel365 재단의 ‘이스라엘 바이블'(Israel Bible)에 게재된 쉬라 쉐크터의 기고를 참조했습니다.

많이 본 뉴스

Local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