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년 4월 23일 해가 진 후에 욤 하쇼아/홀로코스트 추모일의 시작을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나타태고 있다. © 텔레그렘 스크린 켑쳐 |
2025년 4월 24일 오전 10시, 이스라엘 전역이 2분간의 사이렌 소리에 멈춰 섰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 추모일의 공식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예루살렘 야드 바솀 세계 홀로코스트 추모 및 연구센터에서는 대통령과 총리, 생존자,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식이 이어졌고, 600만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는 엄숙한 추모의 시간이 생중계로 펼쳐졌다.
2025년 4월 24일 오전 10시, 이스라엘 전역이 2분간의 사이렌 소리에 멈춰 섰다. 홀로코스트로 인해 살해된 600만 유대인 남녀노소 희생자를 기리는 엄숙한 시간이다. pic.twitter.com/hV2LpNJWVl
— KRM NEWS (@KRMediaLtd) April 26, 2025
이스라엘 방위군(IDF) 전 장병, 전선별로 홀로코스트 추모 및 영웅의 날 기념해
24일 아침, 홀로코스트 추모 및 영웅의 날을 맞아 IDF 장병들은 모든 작전 지역에서 추모 행사를 거행했다. 가자지구, 시리아, 레바논, 유대와 사마리아 등 각 전선에 배치된 전투원들은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1분간… https://t.co/nG1xze9Owr
— KRM NEWS (@KRMediaLtd) April 26, 2025
한편, 해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공식적이고 대규모인 행사와는 대조적으로, 텔아비브 유대인 민족 박물관의 한 작은 공간에서는 조용하지만 더욱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세 명의 야드 바솀 가이드, 그리고 주인공을 이들에게 소개한 한 사람의 관심, 적극적인 경청과 기록을 통해 99세 생존자 마르타 브라운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세상에 전해진 것이다.
![]() ▲ 2025년 4월 24일 오전 10시. 텔아비브 대학 캠퍼스 내 위치하고 있는 유대인 민족 박물관 작은 강당에서 “마르타를 찾아서” 프레젠테이션 행사가 있다. © 유대인 민족 박물관 제공 |
이날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야드 바솀 가이드 알비 카바, 레온 듀발, 탈 하르투브, 그리고 마르타의 이야기를 이들에게 연결해준 리사 레비비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 각자의 관점과 목소리로 마르타 브라운의 삶과 증언을 깊이 있게 전달했다.
![]() ▲ 2025년 4월 25일. 유대인 민족 박물관 작은 강당에서 야드 바솀 가이드 레온 듀발이 킨데르트랜스포트 생존자 99세 마르타 브라운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 이용선 |
행복했던 유년시절과 가족의 삶이 나락으로
마르타는 1926년 7월 19일 독일에서 태어나, 동생 마르고와 함께 평범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 다니엘은 가구공장에서 일했고, 어머니 테레사는 자상한 엄마였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와 나치당의 집권 이후 가족의 삶은 급격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 ▲ 가족 사진: 아버지 다니엘, 장녀 마르타, 여동생 마르고와 어머니 테레즈 © 마르타 브라운 제공 |
1935년, 반유대법으로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고, 가족은 함부르크에 있는 외할아버지 지그문트 니센존의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1936년, 어머니와 함께 아이스링크에 갔던 마르타는 “유대인은 입장 불가”라는 말을 듣고 쫓겨났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열악해져만 갔다. 1938년 1월에 아버지 다니엘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북스테후데에서 운하를 파는 강제노동역으로 끌려갔다.
1938년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영국으로의 이민 절차가 영국에 살던 큰아버지 모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물거품이 됐다. 같은 해 10월, 이모 셀마 가족은 남편이 폴란드 국적이라는 이유로 폴란드 즈바쉰으로 강제 추방됐다. “그 때가 너무 끔찍했어요. 우리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마르타의 가슴아픈 기억이다.
크리스탈나흐트(파괴의 밤) 그리고 생이별
1938년 11월 9~10일, 나치가 조직적으로 유대인 거주지와 상점, 시나고그를 파괴하고 남성들을 체포한 크리스탈나흐트(파괴의 밤) 학살 이후, 어머니 테레사는 딸들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외할아버지와 갈등 끝에, 1939년 5월 21일, 12살 마르타와 10살 마르고는 ‘킨데르트랜스포트’(Kindertransport, 유대인 아동 구출 작전) 열차에 몸을 실었다.
킨데르트랜스포트는 1938년 말부터 1939년 9월 전쟁 발발 전까지 약 1만 명의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유대인 아동을 부모와 떨어뜨려 영국으로 피난시키는 인도적 구출 프로젝트였다. 마르타는 목이 매이는 가운데 역에서는 부모와 포옹도, 작별의 키스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나누었다. 아버지 다니엘은 강제노역장에 있어 작별하지도 못한 채 생소한 나라로 열차는 떠나버렸다.
영국에서 펼쳐진 새로운 고통
영국에 도착한 자매는 각각 친척 집에 맡겨졌다. 마르타는 맨체스터에 사촌 엘라네 집에 머물렀다. 하지만 엘라는 첫 날부터 마르타를 냉대했다. “왜 울고 있니? 엄마가 없어서? 큰 아기잖아!”하고 비꼬는 말이 평생 상처가 됐다. 영국에 도착하면서 6주간 학교를 다녔으나, 그 이후부터 사촌 엘라는 마르타를 가족의 하녀로 집안일과 아이 돌봄 일을 시켰다. 버터 대신 마가린, 허파 고기 샌드위치 등 하등한 음식을 먹었고 좋은 부위의 고기는 오직 엘라 가족만 먹었다.
헤어지기 전, 어머니의 마지막 가르침
킨데르트랜스포트로 이별하기 전, 어머니 테레사는 마르타에게 25개 단어만 허락되는 적십자 전보의 ‘행간을 읽는 법’을 가르쳤다.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우리는 이모 셀마에게 간다”는 전보가 도착했다. 마르타는 이것이 부모가 폴란드로 강제이송된 신호임을, 즉 다시는 부모를 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이모 셀마네 가족이 폴란드로 이송된 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마지막 전보에는 부모가 민스크로 이송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전쟁 후, 부모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1945년 11월, 부모가 1941년 11월 8일 민스크로 이송된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공식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언니인 마르타는 동생 마르고를 만나 “이제 엄마,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어”라고 말해주면서, “우리 둘이서 눈이 빠지도록 엉엉 울었다”고 했다.
![]() ▲ 1945년 11월 16일.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마르타에게 전하고 있는 유대인 난민 구호 위원회의 공식 전보 © 마르타 브라운 제공 |
고립, 제 2의 탈출, 그리고 삶의 재시작
사촌 집에서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교육도, 경제적 독립도, 정서적 지지도 없이 고립된 채 살아야 했다. 결국 마르타는 34세에 집을 도망쳐 나와, 자녀가 없는 영국인 노부부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노부부의 직원이고, 유대인이 아닌 영국 남자와 결혼하면서 유대인 사회와의 접점도 완전히 사라졌다.
50년 만에 다시 접한 유대적 뿌리
50년이 흐른 어느 날, 맨체스터 수영장에서 유대인 상징 목걸이를 한 마조리 네이들러를 만난 것이 마르타에게 전환점이 됐다. “나는 유대인입니다”라는 한마디로 시작된 깊은 우정은, 마르타가 자신의 아픈 과거와 정체성을 다시 마주하고, 유대적 뿌리와 연결되는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로 이주한 마조리의 딸 리사 레비비는 어머니를 통한 마르타의 킨데르트랜스포트 이야기를 듣고 친구인 알비 카바에게 전했다. 알비는 야드 바솀의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알비는 동료 가이드 레온 듀발과 탈 하르투브와 함께 마르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국 수십년 마르타 안에 묻어버린 비극적 이야기가 밖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95세에 처음으로 세상과 나눈 자신의 이야기
2021년, 마르타는 95세의 나이로 세 명의 야드 바솀 가이드와 줌으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처음으로 증언했다. 그리고 세 사람의 도움으로 마르타의 이야기는 야드 바솀 세계 홀로코스트 추모 및 연구센터에 공식 기록으로 남겨졌다.
![]() ▲ 2021년 마르타(중앙)와 줌으로 인터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레온 듀발(왼쪽)과 알비 카바(오른쪽) © 레온 듀발 제공 / 스키린 켑쳐 |
또한, 레온이 집필한 책과 리사가 쓴 시, 탈이 그린 그림을 통해 마르타의 삶은 더욱 다채롭고 깊이 있게 세상에 남겨지게 되었다. 비극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한 소녀의 목소리가 세상에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 ▲ 왼쪽은 레온 듀발이 마르타에 대해 집필한 책 “행간을 읽는 법”이고, 오른쪽은 리사 레비비가 마르타의 인생을 시로 쓰고 탈 하르투브가 그림으로 그려낸 책이다. ©레온 듀발과 리사 레비비/탈 하르투브 제공 |
이 날 레온과 알비, 탈과 리사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서, 줌으로 행사를 지켜보고 있던 99세의 마르타에게 강당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리사는 “여기 있는 모두가 마르타에게 따뜻한 포옹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가족과 생이별한 후, 마르타가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함이었다.
![]() ▲ 4명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서 줌으로 행사를 지켜본 마르타 브라운에게 청중이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 이용선 |
마르타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후세대와 모든 민족을 위해 전해야 할 메모리요, 책임이다.
![]() ▲ 2021년. 마르조리 네이들러와 딸 리사 네이들러-레비비의 도움으로 알비 카바, 레온 듀발, 탈 하르투브가 당시 95세 마르타 브라운과 인터뷰하고 있다. ©레온 듀발 제공 / 스키린 켑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