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을 둘러싼 싸움이 중동은 물론 세계 강대국 질서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페이만 비잔 이탈리아 트렌토대 국제관계학 부교수는 22일 미국 중동전문매체 더미디어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사태의 파장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럽·워싱턴·베이징·모스크바까지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비잔 교수는 미국 UC버클리 방문학자를 지냈으며 중동 문제를 주로 연구해왔다.
비잔 교수는 지금이 중동뿐 아니라 세계 정치 전반의 힘의 균형이 재편되는 순간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중국·러시아 사이에 부드럽거나 때로는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으며, 유럽연합(EU)과 중동도 이 구도 안의 주요 행위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수개월간 중동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향후 몇 년간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 분류되는 미국과 중국·러시아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진영 중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할지를 가를 것이라며 이란과 페르시아만 아랍국들을 핵심 변수로 꼽았다.
비잔 교수는 유럽이 지나치게 제도화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이 러시아·중국에 맞서면서 동시에 동맹인 미국과 공조할 공동 외교노선을 갖추지 못해 존재감이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유럽 내 중도좌파 세력이 하산 로하니 전 이란 대통령과 모하마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 등 개혁파로 분류돼온 인사들과 관계를 맺어온 반면, 중도·중도우파는 이란 반정부 진영을 지지해왔다고 대비시켰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와 조셉 보렐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이란 내 개혁파와 가까웠던 인사로 거론됐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튀르키예가 체결한 메카 공동방위협정을 놓고도 비잔 교수는 경쟁하는 두 미래상 중 하나로 해석했다. 협정 당사국들은 이 협정이 방어 목적이며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는 파키스탄이 지정학적으로 워싱턴보다 베이징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잔 교수가 제시한 대안은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구상이다. IMEC는 2023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해상·철도 연계망 구상으로, 인도와 페르시아만 아랍국·이스라엘을 거쳐 유럽을 잇는 계획이다. 그는 이 노선이 인도 뭄바이에서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 하이파항을 거쳐 지중해를 지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항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 구상이 실현되려면 2020년 이스라엘과 여러 아랍국 간 국교 정상화를 이끈 미국 중재 협정인 아브라함 협정이 완전히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민주화된 이란과 이스라엘 간 미래 관계 정상화를 상정한 이른바 ‘사이러스 협정’ 구상도 언급하며, 이 틀이 실현되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잔 교수는 카타르와 이란이슬람공화국이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진영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이슬람주의를 이끌어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카타르가 런던을 중심으로 한 정치·제도 네트워크와 가깝다고 표현하며 이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봤고, 반대로 파키스탄은 중국 쪽에 기울고 있어 영국의 통제력 약화와 중국·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당 해협을 미국의 자산이라고 규정한 데 대해, 비잔 교수는 이곳이 국제 수로이며 특정국 소유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1979년 수립된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아니라 이란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 해협과 깊은 역사적 연관이 있다며, 호르무즈라는 지명이 조로아스터교 최고신 아후라마즈다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비잔 교수는 이란이슬람공화국 체제가 단순한 권위주의 국가가 아니라 여러 층위로 이뤄진 복합 체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고지도자를 제거해도 체제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구조라며, 지배 세력을 서방과의 협상을 선호하는 ‘실용주의 성향의 과두 세력’과 대결 노선을 고수하는 강경파로 나눴다. 그는 이를 두고 이란이슬람공화국이 1979년 이후 계속해온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비잔 교수는 지난 2월 28일 이란 최고지도자가 사망한 공격을 자신이 지지했다면서도, 시기가 다소 늦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국민에게 거리로 나설 것을 촉구한 행보가 오랫동안 소외됐던 이란인들에게 미국의 지지를 확인시켜준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새로운 이란과 가까운 노선으로 평가한 반면, JD 밴스 미국 부통령에 대해서는 이란 온건파와의 대화를 선호했던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접근법과 유사하다며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비잔 교수는 이란에서 정부에 맞서는 세력을 단순한 반정부 운동이 아니라 이란 사회 그 자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이 이란 인구의 85%에 달한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어진 시위와 앞서 벌어진 ‘여성, 삶, 자유’ 시위가 새로운 이란 사회의 열망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 국민 상당수가 미국을 우방으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비잔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이란인들에게 실질적 지지를 보장하지 않으면 이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적 압박이 체제를 약화시켜 정치적 변화의 기회를 열었다며, 서방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런던과 워싱턴 일각에서 여전히 이란 체제와 타협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서방 정책결정자들에게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