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보당국이 사우디아라비아가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25일 보도했다. 이 평가는 미국과 사우디가 지난 7월 체결한 민간 원자력협정을 심사 중인 의회에 지난달 전달된 기밀문서에 포함됐다.
이번 보도는 해당 협정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협정은 사우디가 통상보다 느슨한 안전장치 아래 민간 원자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나라와의 유사 협정과 달리 사우디가 자국 내에서 우라늄을 농축할 길도 열어뒀다.
협정은 수년간의 협상 끝에 체결됐다. 미국 기업이 사우디에서 원전을 비롯한 원자력 시설을 건설·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사우디는 협상 과정에서 자국 내 우라늄 농축 권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미신고 시설까지 사찰할 수 있도록 하는 ‘추가의정서’ 서명도 거부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018년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사우디도 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아랍에미리트(UAE)와 대비된다. UAE는 2009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으며 이 같은 제한을 모두 받아들였다. 당시 협정은 이후 이 분야의 ‘골드 스탠더드'(모범 기준)로 평가받아 왔다.
미국은 대신 협정에 자체 안전장치를 담았다. 미국 정부는 이것만으로도 사우디가 민간 원자력 사업을 핵무기 개발에 전용하는 것을 막기에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후 알려진 협정 세부 내용은 전문가들과 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비판을 불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협정이 곧바로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는 당분간 UAE처럼 농축 우라늄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 다만 양국은 첫 2년간 사우디 내 농축의 경제성과 핵무기 전용을 막을 안전장치를 검토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워싱턴포스트도 협정에 농축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따지는 2년간의 연구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연구 결과 자국 내 농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미국 기업과 해외 협력업체가 농축 시설을 짓는다. 농축도는 처음엔 5%로 제한되지만, 이후 20%로 높이는 방안을 추가로 검토하게 된다. 협정 내용을 아는 소식통들에 따르면 농축은 미국 기업이 통제하며, 관련 기술은 사우디에 공유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20% 농축 우라늄에도 민간 용도가 있지만, 이 수준에 이르면 무기급인 약 90%까지 가는 기술적 과정의 상당 부분을 마친 셈이라고 지적한다. 농축 물질 일부가 군사용으로 몰래 빼돌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이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만큼 그런 위험은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부 관리들은 사우디가 원전 개발을 위해 중국이나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협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의회에 전달된 기밀문서에는 미국 국무부의 평가도 담겼다. 이 매체 소식통들은 국무부가 정보당국과 달리 협정의 안전장치와 사우디 정부의 약속을 비교적 신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는 워싱턴포스트의 질의에 직접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압둘아지즈 빈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의 앞선 성명을 참고하라고 했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당시 사우디의 원자력 사업이 평화적 목적이며 최고 수준의 책임성과 투명성 아래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프 머클리 미국 상원의원(민주·오리건)은 워싱턴포스트에 이렇게 중대한 사안에서 사우디의 약속에 기대선 안 된다며 “완전히 엉터리”라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가 자국 내 농축 권리를 고집하는 것 자체가 순수 민간용이 아닌 프로그램을 원한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머클리 의원은 “핵무기 개발 의도를 버렸다면 자국 내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포기하고 IAEA의 대대적인 사찰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머클리 의원 등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25일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협정을 비판했다. 이들은 행정부가 기존 관행을 깨고 느슨한 제한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사우디가 우라늄 농축 능력을 확보하고 핵무기까지 개발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도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원자력협정이 발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중재로 이스라엘이 UAE·바레인 등 아랍 국가들과 맺은 관계 정상화 협정이다.
그럼에도 원자력협정은 이미 의회 심사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 법에 따라 의회는 회기 중 90일간 협정을 심사한다. 반대파가 협정을 저지하려면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상·하원 각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