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에 북극항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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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를 통과하는 선박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중국 해운사 시레전드(Sea Legend)가 이번 주 북극해를 지나는 항로로 중국 닝보항에서 영국 펠릭스토항까지 컨테이너선을 보낸다고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이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체 항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다.

닝보는 중국 동부 해안의 최대 항만 가운데 하나이고, 펠릭스토는 영국 최대 컨테이너 항구다. 이번 운항이 성공하면 지금까지 너무 멀고 험해 상업 운송에는 맞지 않는다고 여겨져온 항로가 실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게 된다.

이 항로는 러시아 북쪽 해안을 따라 북극권을 지난다. 이른바 ‘얼어붙은 실크로드’로 불리는 구간이다. 운항 기간은 약 20일로, 기존 항로의 절반 수준이다.

무엇보다 이란과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이 집중된 길목을 피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 원유가 빠져나가는 관문이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통로다. 두 곳이 유조선과 화물선에 닫히면서 전 세계 물류가 흔들려왔다.

한국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새 항로가 자리 잡으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 유럽·튀르키예·북아프리카를 잇는 교역 기회가 새로 열릴 수 있다고 와이넷은 전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고수요 품목의 운송 지연도 줄어들 수 있다.

항로가 열리게 된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북극 해빙이 녹으면서 일정 기간 항행이 쉬워졌고, 선박이 쇄빙 장비를 갖춰야 할 필요도 줄었다. 최근 2년간 이 항로를 지난 선박은 38척으로, 2024년 15척에서 2025년 23척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이스탄불브리지가 이 항로로 컨테이너선을 보낸 첫 해운사가 됐다.

이번 운항이 주목받는 이유는 규모에 있다. 중국이라는 경제 대국이 이 항로를 일회성 실험이 아니라 아시아-유럽 정기 상업 항로로 시험하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계도 뚜렷하다. 기상 조건 탓에 실제 항행이 가능한 기간은 8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가량에 그친다. 다만 이번 시험 운항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운임을 크게 낮추면서 정치적 불안과 안보 위협에 대한 노출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 항로의 열쇠를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점이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Rosatom) 산하 기관이 관리한다. 항로는 28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고, 각 구간의 통항 허가는 러시아 당국이 내준다. 이 항로가 주요 교역로로 자리 잡을 경우 러시아는 아시아-유럽 교역의 상당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서방 기업들은 그동안 이 항로를 피해왔다.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가 2018년 시험 운항을 한 뒤에도 서방 업체들은 러시아와의 거래를 줄이려는 판단과 북극 생태계 훼손 우려 때문에 진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물류난이 길어지면서 두 고려 사항 모두 압박을 받고 있다.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보다 확실히 싸고 안전해지면, 상업적 필요가 환경 우려와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의 러시아 고립 기조를 앞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북극은 이미 전략 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을 경제적 생명줄로 보고 원자력 쇄빙선과 북극 인프라에 수십억달러를 투입해왔다. 중국은 2018년부터 스스로를 북극에 인접한 국가로 규정하며 관여를 넓혔고, 2024년에는 쇄빙선 3척을 북극 해역에 보냈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이 향후 북극 항로를 주도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미국이 그린란드에 전략적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도 얼음이 물러나며 북극 접근성이 높아지는 흐름이 있다. 캐나다와 덴마크, 노르웨이도 이 지역에 영토·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NATO) 가입은 경쟁 구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경제적 가치가 커지는 해역에서 정치·군사적 마찰이 생길 여지도 함께 커졌다.

이번 시험 운항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충분히 확인되면,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 봉쇄는 일시적인 항로 우회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세계 교역의 축 자체가 북쪽으로 옮겨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와이넷은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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