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과 그리스가 지난달 31일 텔아비브에서 30억유로(약 4조3000억원, 100억 셰켈 이상) 규모의 정부 간 방공망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스의 ‘아킬레우스의 방패’ 사업에 따라 이스라엘이 그리스 전역을 아우르는 다층 방공망 체계를 설계부터 구축까지 통째로 공급하는 계약으로, 이스라엘 방산 수출 역사상 최대 규모다.
계약서에는 아미르 바람 이스라엘 국방부 국장(예비역 소장)과 요아니스 부라스 그리스 국방부 국장(예비역 소장)이 서명했다. 이스라엘 국제국방협력국(SIBAT), 국방연구개발국(MAFAT), 이스라엘 미사일방어기구 관계자들과 라파엘·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 최고경영자(CEO)들도 서명식에 참석했다.
이번 사업에는 이스라엘군이 실전 배치해 운용 중인 다윗의 물매(David’s Sling), 바라크 MX, 스파이더(SPYDER) 등 미사일방어체계가 핵심 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 IAI 자회사 엘타가 제작하는 MMR 레이더가 공중 감시를 맡고, 라파엘이 개발한 국가 지휘통제체계가 이들 방어 계층을 하나의 작전망으로 통합한다. 그리스 방산업체들은 라파엘과 IAI의 하청업체로 참여해 계약 전체 규모의 약 7억유로가량을 그리스 측이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방공망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번 방공망 설계가 이란·헤즈볼라·후티의 드론과 탄도미사일 수천 발을 요격해온 최근 전쟁의 실전 경험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이와 별도로 그리스 전략 시설을 무인기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라파엘의 대(對)드론 요격체계 ‘드론돔’ 도입에 2600만유로 규모의 부속 계약도 함께 체결했다.
다니엘 골드 이스라엘 국방연구개발국(MAFAT) 국장(예비역 준장)은 이번 계약을 “이스라엘 기술력의 훈장과도 같다”고 평가하며 이스라엘이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기술 개발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실전에서 검증된 최첨단 다층 방공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이 그리스가 이스라엘을 핵심 전략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요아브 투르게만 라파엘 최고경영자(CEO)는 다윗의 물매와 스파이더, 지휘통제체계 등 라파엘의 방어체계가 그리스 국가 방공 인프라에 채택된 것이 이스라엘에서 축적된 독보적 실전 경험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가이 바를레브 IAI 최고경영자(CEO)도 두 나라가 공통의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다며 이번 협력이 양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야이르 쿨라스 이스라엘 국제국방협력국(SIBAT) 국장(예비역 준장)은 이번 계약이 SIBAT가 이끌어온 정부 간 협력 모델에 대한 그리스 측의 깊은 신뢰를 반영한다며, 그리스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도 전략적 협력을 계속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과 바람 국장이 방산 수출 확대를 통해 이스라엘군의 전력 증강과 국제적 위상 강화를 추진해온 정책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계약의 배경에는 튀르키예를 둘러싼 그리스와 이스라엘의 공통된 안보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2030년까지 군수물자의 자급자족을 국가 목표로 내걸고 자체 방공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나 그리스의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맞먹는 다층 방공망을 목표로 65억달러 규모의 ‘철의 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철의 돔이 우방에는 신뢰를, 적에는 두려움을 심어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은 개전 이후 비상 생산체제를 가동해 자국군 수요와 해외 파트너국 공급을 동시에 맞춰왔다. 유럽 내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실전에서 검증된 방어체계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아이언돔과 다윗의 물매, 스파이더 등 이스라엘산 방공체계를 도입하는 유럽 국가들은 최근 10년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