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시작과 시작이 만나는 시간” 히브리력과 가을 대절기의 깊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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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4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마하네 예후다 시장에 마련된 초막절 물품 마켓에서 4가지 식물을 사기 위해 살펴보고 있다. (사진=박지형 / KRM NEWS)

여름의 열기가 물러가고 들녘이 결실을 준비하는 9월, 이스라엘은 일 년 중 가장 분주하고도 거룩한 시간을 통과한다. 아직도 3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상점마다 ‘샤나 토바(좋은 해가 되기를)’라는 인사가 가득 차고, 거리마다 수카(초막)를 짓는 망치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한국의 9월이 결실의 계절인 한가위를 품고 있듯, 이스라엘의 9월은 히브리력의 새해를 맞아 삶을 돌아보고 공동체의 신앙과 기쁨을 나누는 절기의 달이다. 이스라엘과 한국을 잇는 문 《샤아르》의 두 번째 여정은 이스라엘 문화의 뿌리인 ‘히브리력’과 ‘9월의 가을 명절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하늘의 달과 땅의 해를 함께 품은 시간, 히브리력

이스라엘의 절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시간관인 ‘히브리력’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태양력(그레고리력)과 달리, 히브리력은 달의 차고 기울어짐을 기준으로 삼되 태양의 사계절 순환을 합친 태음태양력이다. 한국의 음력과도 닮아 있다.

태음력의 1년(약 354일)은 태양력의 1년(약 365일)보다 약 11일이 모자란다. 이 차이를 그대로 두면 봄 명절인 유월절이 겨울이나 가을로 밀려나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력은 약 19년 동안 7번의 윤달을 넣어 계절의 균형을 맞춘다.

재미있는 점은 히브리력에는 크게 ‘두 개의 새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는 출애굽을 기념하는 봄의 첫 달인 니산월(3~4월경)을 새해로 삼지만, 농경 문화인 유대 전통에서는 가을의 시작인 티슈레이월(9~10월)을 새해로 삼는다. 이 티슈레이월에 이스라엘의 가장 큰 가을 명절들이 집약되어 있다. 

9월을 수놓는 이스라엘의 3대 가을 명절

로쉬 하샤나 (Rosh Hashanah) – 나팔 소리로 여는 새해

‘해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로쉬 하샤나는 히브리력 일곱째달(티슈레이월) 첫 번째 날로, 이스라엘의 공식적 새해 첫날이다. 양력으로는 보통 9월 중순경에 찾아온다.

2026년 로쉬 하샤나는 9월 11일 해질 무렵 시작되어 9월 13일 저녁까지 이어졌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하나님 앞에서 시작하는 시간으로 여긴다. 로쉬 하샤나의 대표적인 풍습은 회당에서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인 ‘쇼파르’를 불어 울리는 것이다.  나팔 소리는 회개와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라는 영적인 경종이다.

이날 이스라엘 가정에서는 동그란 모양의 할라빵과 사과를 꿀에 찍어 먹는다. 달콤한 꿀처럼 새해에는 삶의 모든 순간이 달콤하고 복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원형의 빵처럼 한 해가 끝없이 완벽하게 순환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욤키푸르 (Yom Kippur) – 거룩한 침묵의 대속죄일

새해가 시작되고 열흘째 되는 날은 일 년 중 가장 신성한 날인 ‘욤키푸르(대속죄일)’이다. 새해부터 욤키푸르까지 10일간의 기간을 ‘회개의 날들(Ten Days of Repentance)’이라 부르며, 유대인들은 지나온 삶에서 타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서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

2026년 욤키푸르는 9월 20일 해질 무렵부터 21일 밤까지 지켜졌다. 이 날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거룩한 정적에 휩싸인다. 약 25시간 동안 완벽한 금식과 기도가 이어지며, 방송국은 송출을 중단하고 대중교통과 공항도 운영을 멈춘다. 심지어 도로에 응급차와 경찰차를 제외한 일반 차량은 다니지 않아 온 나라가 완전한 정적 속에 하나님과 자신만을 대면한다. 공항까지 완전히 멈추는 비움과 회개를 통해 신성하게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수콧 (Sukkot) – 하늘 아래 지은 초막에서의 기쁨

그런데 이 엄숙한 시간이 지나면 분위기가 놀랍게 달라진다.

불과 며칠 뒤인 9월 25일 해질 무렵부터 수콧(초막절)이 시작된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보호하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절기다. 동시에 가을의 수확을 기뻐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이 기간이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 베란다, 마당, 혹은 아파트 주차장에 나뭇가지와 풀로 지붕을 얹은 임시 거처인 ‘수카(초막)’를 짓는다. 일주일 동안 가족과 이웃들은 이 수카 안에서 밥을 먹고, 손님을 대접하며, 밤에는 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한다. 번듯한 집을 두고 왜 거친 초막에 거할까? 인간이 누리는 물질적 집은 유한하며, 진정한 보호와 안식은 오직 하늘로부터 온다는 겸손의 고백이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순종이다. 이때 유대인들은 모든 인류를 상징하는 4가지 식물을 들고 열방을 위해 기도한다. 수콧은 낯선 이와 나그네를 기꺼이 초대해 함께 기뻐하는 가장 따뜻한 공동체 축제이다. 

초막절의 일곱째 날이 끝나면 쉬미니 아쩨렛(Shemini Atzeret)과 심하트 토라(Simchat Torah)가 이어진다. ‘여덟째 날의 모임’이라는 의미의 쉬미니 아쩨렛과 ‘토라의 기쁨’이라는 의미의 심하트 토라는 올해 10월 2일 해질 무렵부터 10월 3일까지 지켜진다. 이날에는 토라의 연간 낭독 주기를 마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한다. 

문(샤아르)을 넘어: 이스라엘의 가을이 한국에 건네는 인사

이처럼 이스라엘의 가을은 하나의 긴 영적 여정처럼 이어진다.

새로운 시작에서 → 자신을 돌아보고 → 용서와 속죄를 구하고
→ 하나님의 보호를 기억하며 → 기쁨으로 수확을 축하하고 → 다시 말씀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한가위가 둥근 달을 보며 일 년 농사에 감사하고 친지들과 정을 나누듯, 이스라엘 역시 9월의 가을 명절을 통해 한 해를 돌아보고 사람과 사람, 하늘과 땅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다. 비록 언어와 땅은 다르지만, 가을의 결실 앞에서 겸손해지고 이웃과 따뜻한 온기를 나누려는 마음은 한국과 이스라엘이 꼭 닮아 있다.

두번째 호로 찾아온 《샤아르》가 이 가을 명절의 풍성한 메시지처럼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삶에 깊은 위로와 희망의 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샤나 토바 우메투카 (달콤하고 복된 새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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