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4일 오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광복절 8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광복절 당일인 15일이 토요일이라 유대교 안식일과 겹쳤다. 안식일에는 이동과 모임이 어려운 현지 사정을 고려해 행사는 하루 앞당겨 열렸다. 박인호 주이스라엘 대한민국 대사와 이강근 이스라엘 한인회장을 비롯해 교민과 유학생, 고려인 동포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우리와 같은 해에 독립한 나라에서”
이강근 한인회장은 개회사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이 나란히 1948년에 독립을 이룬 사실을 짚었다. 그는 “우리와 같은 해에 독립한 이스라엘 땅에서 광복절을 기념할 수 있어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차례로 이어진 뒤 박인호 대사가 단상에 올랐다. 박 대사는 경축사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희생을 기렸다. 이어 최근 중동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도 한인 사회의 안정과 연대를 이끌어온 이스라엘 한인회에 감사를 표하고 “동포 여러분의 안전과 권익 보호를 대사관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재외국민 보호와 영사 조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히브리대학교 한국학과 벤자민 교수도 한국어로 축사를 전했다. 유대인인 벤자민 교수는 “한국과 이스라엘 모두 어려운 역사를 딛고 독립을 이룬 나라”라며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동포 여러분이야말로 두 나라를 잇는 인도주의적 다리”라고 말했다. 그가 몸담은 히브리대학교에는 현재 한국인 유학생 약 100명이 재학 중이다.
이날 행사의 가장 눈에 띄는 순간은 만세삼창이었다.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박인호 대사가 다시 한번 단상 앞에 섰다. “대한독립 만세!”
박 대사의 선창에 참석자들이 목소리를 모아 화답했다. 세 번의 만세가 이어지는 동안 식장에는 오랜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뿌리를 이어가는 사람들
이날 무대는 이스라엘 한인 사회가 얼마나 다양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4세 올라 씨가 연단에 올랐다. 올라 씨는 시아버지가 이스라엘 유대인, 시어머니가 러시아 고려인이라며 자신의 가족을 소개했다. ” 그녀는 “여러 나라와 문화가 뒤섞인 가족이지만, 세대가 바뀌고 국적이 달라져도 뿌리는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 순서로 이스라엘인 나베 씨의 가야금 연주가 이어졌다. 정작 놀라움을 자아낸 건 연주보다 그녀가 풀어낸 이야기였다. 한국인이 아닌 그녀의 입에서 600년 넘는 아리랑의 역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1926년 나운규 감독의 무성영화 ‘아리랑’ 개봉 이후, 일제강점기 관객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독립 의지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가사 중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는 구절이 20~30년 전부터 “우리 가슴엔 희망도 많다”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아리랑의 역사를 유대인 연주자가 짚어내는 모습에 교민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한국을 보여주고 싶어서”
교민 황영신 씨는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자녀에게 한국인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이날 행사를 찾았다. 그녀는 “자녀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곳 정서가 더 깊고 한국에 대한 경험은 적다”며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첫째 아이가 대한민국 군대에 입대한 뒤로, 둘째 아이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애국가 제창이나 만세삼창처럼 이스라엘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직접 경험시켜 줄 좋은 기회였습니다.”
텔아비브 인근에 거주해 평소 한인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는 청년 교민 이다윗 씨도 오랜만에 발걸음을 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한인 공동체가 이렇게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815를 만든 ‘독립 애국지사’들의 정신 계승
기념식에 이어진 특강에서는 숭실대학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하충엽 교수가 강단에 섰다. 그는 1945년 815 광복이 거저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북간도 명동촌에서 세워진 명동학교가 그 근거였다. 유학자 김약연 선생이 세운 이 학교는 1925년 폐교될 때까지 1200명의 독립 애국지사를 길러냈고, 이들은 신앙과 애국심으로 무장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설명이다.
하 교수는 이러한 선조들의 정신을 오늘의 교민들이 이어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교민들을 ‘현대판 통일 애국지사’로 부르며, 남북의 평화 통일을 기도로 준비하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한인회는 오는 12월 한인회 총회 및 교민의 밤 행사를 예고하며 이날 순서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