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이스라엘의 거리는 매주 멈춰섰다. 초정통파 유대인, 이른바 ‘하레디(Haredi)’의 병역 문제를 둘러싼 시위 때문이다.
하레디 청년이 병역 기피 혐의로 체포될 때마다 브네이브락과 예루살렘 등에서는 대규모 시위와 도로 봉쇄가 이어지고, 반대편에서는 예비군과 가족들이 하레디 징집을 요구하며 맞불 시위에 나섰다.
최근 의회가 휴회로 들어가고 본격적인 총선 체제로 접어들면서 거리의 대규모 충돌은 한풀 꺾였지만, 문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싸움의 무대가 거리에서 선거판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400명으로 시작된 병역 면제
하레디 병역 면제의 시작은 이스라엘 건국 직후인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총리이자 국방장관이었던 다비드 벤구리온은 홀로코스트로 단절될 위기에 처한 유대교 학문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예시바, 즉 유대교 신학교에서 토라를 공부하는 학생 약 400명의 병역을 면제했다. 의회 법률이 아닌 국방장관의 재량에 따른 조치였다.
처음에는 소수에게 허용된 행정적 예외였지만 1977년 메나헴 베긴 정부가 하레디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면제 인원 제한을 없앴고, 이후 하레디 인구 증가와 함께 대상자는 크게 늘어났다.
대법원은 1998년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 특정 집단 전체를 국방장관의 재량만으로 병역에서 제외할 수 없다며, 의회가 하레디 병역 문제를 정식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2년에는 예시바 학생들의 입대를 일정 기간 유예하되 이후 군 복무나 사회봉사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탈 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실제 입대율이 기대만큼 늘지 않자 대법원은 2012년 이 법이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무효화하고, 의회에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2014년에는 하레디 징집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에 미달할 경우 병역 기피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이른바 ‘샤케드 법’이 새로 마련됐다. 하지만 2015년 하레디 정당들이 다시 연정에 참여하면서 처벌 조항과 시행 시기가 크게 완화됐고, 대법원은 2017년 이 개정법 역시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무효화했다. 이후 정부와 의회는 다시 새로운 병역법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정치적 교착 속에 입법이 계속 미뤄졌다.
결국 2023년 6월 마지막 유예 기한마저 끝나면서 하레디의 일괄 병역 면제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도 사라졌다.
10월 7일 이후 달라진 분위기
갈등을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었다.
이스라엘이 장기전에 들어가면서 정규군의 병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예비군들이 반복적으로 소집됐다. 군 복무로 직장과 가정을 떠나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수만 명의 하레디 남성들이 여전히 군 복무를 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도 급격히 커졌다.
결국 2024년 6월 대법원은 하레디 남성들을 일괄적으로 징집 대상에서 제외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정부가 징집에 나서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예시바 학생들에게 국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고, 이후 군은 징집 통지와 병역 기피자 단속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토라 공부도 이스라엘을 지키는 일”
하레디 사회가 군 복무를 완강히 저항하는 표면적 명분은 ‘토라토 우마누토’, 즉 “토라 공부가 곧 그의 직업”이라는 원칙이다.
하레디 사회에서는 예시바에서 토라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유대 국가를 영적으로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는 전통이 강하다. 군인이 무기로 국가를 지킨다면 자신들은 기도와 토라 연구로 국가를 지킨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우려는 공동체의 정체성이다. 남녀가 함께 생활하고 세속적인 문화에 노출되는 군대가 젊은이들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결국 하레디 공동체에서 이탈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은 이를 고려해 종교생활을 보장하는 하레디 전용 부대와 복무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지만, 일부 랍비들은 이마저도 세속 사회로 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10월 7일 이후 스스로 군 복무를 선택하는 하레디 청년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7월부터 2026년 6월까지 하레디 입대자는 4,298명으로 전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징집 대상자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최근에는 군 복무나 국가봉사 참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신생 하레디 정당 ‘하레디 대중당’도 등장했다. 당을 창당한 모티 라이트너 베이트셰메시 부시장은 하루 종일 토라를 공부하는 예시바 학생들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호하되, 그렇지 않은 하레디 남성들은 국가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군 복무나 국가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는 총선이 답할 차례
1948년 400명에게 허용됐던 작은 예외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의 군과 정치, 사법부와 거리까지 뒤흔드는 국가적 갈등이 됐다. 에얄 자미르 참모총장은 정규 병력만 약 1만 2천~1만 5천 명이 부족하며,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연말까지 부족 인원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은 10월 27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우파 연립정부 체제에서 샤스와 통합토라유대주의 등 하레디 정당들은 오랫동안 정부 구성의 핵심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하레디 징집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어려웠던 것도 이들의 지지를 잃을 경우 연립정부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 3월 40.5%에서 6월 29.4%로 급락했다. 여기에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출신 가디 아이젠코트가 신당 야샤르를 이끌고 부상했고, 나프탈리 베네트·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두 사람은 정당을 통합해 반네타냐후 연합을 결성했다. 베네트 대표는 자신이 집권하면 병역 기피자에게 국가 자금을 “단 1셰켈도” 지원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복무법’을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하레디 정당을 포함한 네타냐후 연정이 과반에 크게 못 미치는 반면, 초정통파를 제외한 야권 블록은 과반 확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78년을 끌어온 하레디 병역 면제 문제는 법정 공방과 거리 시위를 거쳐, 이제 투표함 앞에 섰다. 하레디 정당이 다음 연정에서 밀려난다면 전면 징집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지만, 그만큼 하레디 사회의 반발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이들이 다시 연정의 핵심 축이 된다면, 이스라엘은 종교와 세속, 신앙의 의무와 시민의 의무 사이에서 타협과 충돌을 반복하는 줄타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 답은 10월 27일,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