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헤브론 로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힌놈 골짜기 건너편 언덕에 유난히 눈에 띄는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시온산호텔이다.
아치형 창문과 두꺼운 석벽, 힌놈 골짜기를 향해 난 창문들만 보면 오래된 예루살렘의 저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은 건물은 지난 140여 년 동안 예루살렘의 변화와 함께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돼 왔다.
오늘날 호텔 한편에 남아 있는 이 건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스만제국 말기부터 영국 위임통치기와 1948년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을 둘러싼 역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안과병원
이 건물의 시작은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십자군 시대부터 이어져 온 자선 기사단인 영국 성요한 기사단이 예루살렘에 유독 많았던 안과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원을 세우기로 하면서다. 영국 켄트 공작과 그의 아들 에드워드 7세 왕세자(훗날 국왕)가 후원자로 나섰고, 기사단은 오랜 설득 끝에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의 런던 주재 대사로부터 병원 설립 승인을 받아냈다. 19세기 후반 예루살렘은 빈곤과 열악한 위생, 과밀한 인구가 겹치며 안질환이 유독 크게 번지던 도시였다.
병원 문이 열리자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야파, 나블루스는 물론 멀리 티베리아스와 시리아, 요르단에서까지 안과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유대인·무슬림·기독교인을 가리지 않았고, 1882년 한 해에만 하루 평균 80명이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88년 말에는 연간 5만8000명이 이 병원에서 치료받았고, 약 900건의 수술이 이뤄졌다.
평화로운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오스만 제국군이 병원을 접수해 탄약고로 사용했고, 이 과정에서 건물 일부가 파손됐다. 여기에 1927년 예루살렘을 강타한 지진까지 겹치며 건물은 크게 훼손됐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시작하면서 병원은 다시 문을 열었다. 건축가 클리퍼드 홀리데이가 건물을 재건하며 도로 양쪽에 두 개의 동을 새로 지었는데, 그사이로 지금의 헤브론 로드(당시 베드레헴 로드)가 지났다. 두 동을 잇기 위해 도로 밑으로 지하 터널을 뚫었고, 이 터널은 통로뿐 아니라 의약품을 저장하는 냉장 창고로도 쓰였다. 병원은 1948년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


1948년 독립전쟁, 포위된 시온산과 목숨을 건 야간 횡단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벌어진 1948년 5월 18일, 유대인 방위조직 하가나의 하렐 여단이 시온산 정상을 탈환하며 포위된 올드시티 유대인 지구에 처음으로 길을 냈다. 그러나 열흘 뒤인 5월 28일 올드시티는 다시 요르단 아랍군단 손에 넘어갔고, 시온산은 북·동은 적진에, 남쪽은 가파른 힌놈 골짜기에 둘러싸인 고립된 거점으로 남았다. 서쪽 접근로는 올드시티 성벽 위에 자리 잡은 요르단군 저격수의 사정권을 고스란히 통과해야 하는 죽음의 통로였다.
부상자를 실어 나르고 보급품을 채워 넣을 방법이 필요했다. 하가나 에치오니 여단 공병대의 우리엘 헤페츠는 1948년 12월, 옛 병원 건물(현 시온산호텔)과 시온산 위 초소를 잇는 길이 200m의 강철 케이블카를 놓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압살롬의 길’이라는 암호명이 붙은 이 케이블카는 골짜기 위 최고 50m 높이를 오가며 최대 250㎏의 짐을 날랐다. 편도 2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요르단군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해가 진 뒤에만 움직였고 동이 트기 전 골짜기 바닥으로 다시 내려놓았다. 양쪽에서 각각 세 명의 병사가 밤마다 케이블을 감아올리며 부상자와 탄약, 식량을 실어 날랐다.
케이블카는 이렇게 6개월가량 매일 밤 운행되다 1948년 7월 휴전과 함께 임무를 마쳤다. 하지만 그 존재는 곧바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혹시 모를 재가동에 대비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예루살렘이 통합될 때까지 케이블카를 정비 상태로 유지했고, 작전의 비밀은 설계자 헤페츠가 이스라엘 안보상을 받은 1972년에야 공식적으로 풀렸다.


병원에서 특급 호텔로
전쟁이 끝난 뒤 옛 병원 건물은 예시바(유대교 신학교)로 쓰이다 1986년 호텔로 개조돼 지금의 시온산호텔이 됐다. 케이블카가 오가던 작전실 자리에는 작은 박물관이 들어섰고, 실제 사용됐던 카트가 지금도 전시돼 있다. 성요한 기사단의 문장이 새겨진 옛 벽체와 도로 밑 지하 터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지하 터널로 이어지는 헤브론 로드 맞은편 건물은 오늘날 시온산호텔과는 별개로, 예루살렘 예술가·공예가들의 작업 공간인 ‘베이트 오트 하모차르(예루살렘 하우스 오브 퀄리티)’로 쓰이고 있다.
2019년 이스라엘 부동산 대기업 아즈리엘리 그룹이 호텔 건물과 부지를 2억 6500만 세켈에 사들이며 새 국면을 맞았다. 아즈리엘리 그룹은 기존 역사적 건물을 보존·복원하면서 객실을 341실 규모로 늘리고 지하에 약 220대 규모의 주차장을 짓는 대규모 증축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헤브론 로드 한편에는 그렇게 예루살렘의 여러 시대가 한 장소에 겹쳐 남아 있다.
역사는 반드시 박물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매일 지나치는 오래된 건물 한 채가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