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올드시티 남서쪽, 여름밤이면 조명을 받아 금빛으로 물든 성벽을 배경으로 무대에 불이 켜진다. 계단식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는 곳,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야외 공연장 술탄풀(Sultan’s Pool)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장소지만, 이곳의 본래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무대와 객석이 들어선 바닥 아래에는 오랜 세월 예루살렘에 물을 끌어오고 저장해 온 역사가 켜켜이 남아 있다.
예루살렘은 늘 물이 부족했다

예루살렘은 풍부한 수량을 가진 강이 흐르는 도시가 아니다. 고대 예루살렘의 가장 중요한 수원 가운데 하나는 기혼 샘이었지만, 도시가 성장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수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제2성전 시대에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객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도시 밖에서 물을 끌어오는 대규모 수로망이 만들어졌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베들레헴 남쪽에 위치한 솔로몬 연못(Solomon’s Pools)과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수로였다.
솔로몬 연못에 모인 물은 두 개의 주요 수로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중 하나가 ‘하부 수로(Lower Aqueduct)’였다. 이 수로는 제2성전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솔로몬 연못에서 예루살렘 성전산까지 이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보수와 개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발견되는 수로의 모든 부분을 하나의 시기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수로는 오늘날의 술탄풀 일대를 지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부터 이곳에 물을 가둔 연못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뱀의 연못’을 이곳으로 보기도 하지만, 아직 정설로 굳어지지는 않았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는 연못이 비잔틴 시대에 처음 조성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못과 수로가 정확히 어떻게 이어져 있었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 실마리 가운데 하나가 2009년에 고고학 발굴에서 발견됐다. 맞은편 언덕에 박물관을 짓기 앞서 진행된 발굴에서, 이스라엘 고고학청이 하부 수로의 물을 연못으로 보내던 물길을 찾아낸 것이다.
발굴을 통해 하부 수로의 일부와 그 수로를 받치던 아치형 다리의 흔적이 발견됐다. 수로는 술탄풀 일대를 따라 남서쪽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이어졌다. 약 25m에 이르는 발굴 구역에서 수로의 일부가 확인됐으며, 수로 내부에는 방수를 위한 회반죽도 남아 있었다.
게르마누스의 연못에서 술탄의 연못으로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이 연못은 라틴어로 ‘라쿠스 게르마니(Lacus Germani)’, 곧 ‘게르마누스의 연못’이라 불렸다. 14세기 말에는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르쿠크가 이 일대의 둑을 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곳이 ‘술탄풀’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오늘날의 이름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술레이만 1세에게서 비롯됐다. 술레이만은 1530년대에 지금 우리가 보는 예루살렘 올드시티 성벽을 새로 쌓았다. 동시에 성지로 몰려드는 순례객에게 마실 물과 정결 의식에 쓸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기존 수로를 재정비했다.
술레이만은 1536년 수로에서 물을 끌어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 급수대인 ‘사빌’도 설치했다. 이 사빌은 약 5백 년이 지난 지금도 헤브론 로드 옆에 남아 있으며, 술탄의 명으로 지었다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마른 연못에 들어선 가축 시장

오스만 제국 말기로 접어들면서 술탄풀은 어느새 가축을 사고파는 장터가 됐다. 19세기 서구 사진가들이 남긴 옛 사진 속에는 물이 고인 연못 한쪽에서 가축과 상인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일부 서구 탐험가와 순례객들은 이곳을 성경 속 지명을 빌려 ‘기혼의 아랫못’이라 부르기도 했다.
휴전선 곁의 골짜기
1948년 독립전쟁 이후 예루살렘이 둘로 나뉘면서 이 골짜기의 운명도 달라졌다. 올드시티를 포함해 동예루살렘을 차지한 요르단과 서예루살렘을 차지한 이스라엘 사이의 휴전선이 바로 곁을 지나면서, 술탄풀 일대는 저격과 포격을 걱정해야 하는 접경 지대가 됐다. 한때 순례객들이 오가던 길은 긴장이 감도는 경계선이 됐고, 술탄풀 일대는 19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됐다.
성벽 아래 객석이 되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다시 하나가 되면서 골짜기에도 새 숨이 불어넣어졌다. 당시 테디 콜레크 시장은 성벽 맞은편 일대를 문화·예술 지구로 가꾸는 계획을 추진했고, 그 일환으로 예루살렘 재단이 1970년대 말 술탄풀을 야외 공연장으로 개발했다. 1978년에는 술레이만의 급수대도 복원됐다. 정식 이름은 메릴 하센펠드 원형극장이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그냥 ‘술탄풀’이라 부른다.
이후 이곳은 예루살렘 대표 공연장으로 자리 잡았다. 여름이면 콘서트와 축제가 이어졌고, 늦여름에는 국제 예술·공예 축제 ‘후초트 하요체르’가 열려 밤늦도록 사람들이 골짜기를 채웠다.
지금 술탄풀을 찾으면 고대 수로가 눈앞에 길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발굴된 수로와 아치형 다리의 일부는 다시 흙에 덮였다. 그래서 술탄풀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면 평범한 공연장처럼 보인다.
다시 물이 고이는 연못
명성과 달리 공연장으로서의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가파른 골짜기 아래 자리한 탓에 드나드는 길이 불편했고, 주차와 공연 운영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공연이 없는 날이면 넓은 연못 바닥은 텅 빈 채 남겨졌다.
예루살렘 시와 예루살렘 재단은 2022년 말, 약 1억 셰켈을 들여 술탄풀 일대를 전면 재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모셰 리온 시장은 이를 도시의 ‘전략적 대표 사업’이라고 불렀다. 계획은 2025년 가을 예루살렘 지역 건축위원회의 승인을 받았고, 지금 골짜기에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의 핵심은 공연이 있는 날에만 붐비던 이곳을 1년 내내 열려 있는 도시공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원형극장은 전면 개보수를 거쳐 약 6,200명을 수용하는 규모로 새로 단장하고, 관람석과 지하 화장실, 공연자 대기실, 상설 매표소를 새로 갖춘다. 주변에는 산책로와 쉼터, 정원, 카페가 들어선다.
역사의 흔적을 살리는 작업도 함께 진행된다. 고대 둑과 수로는 보존하고 땅속에 묻혀 있던 유적은 드러내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옛 연못이 있던 자리에 다시 물을 채운 연못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이름만 ‘연못’으로 남아 있던 이곳에 오랜 세월이 흘러 실제로 물이 다시 고이게 되는 셈이다.
공사 가림막이 걷히는 날, 성벽 아래 연못에는 다시 물이 찰랑이고 무대 위로는 음악이 흐를 것이다. 그 물가에 앉은 이들의 발밑에는, 물이 흐르던 시간만큼이나 긴 예루살렘의 이야기가 조용히 고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