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타구스 전 특사 “이-레바논 정상화 절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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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오르타구스 전 미국 이스라엘·레바논 관계 담당 특사가 콩코르디아 서밋에서 패널 토론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모건 오르타구스 전 미국 이스라엘·레바논 관계 담당 특사가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관계 정상화 협상이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버진로드를 절반쯤 걸어온 단계에 비유할 만큼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다만 협상이 축구 경기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나는 게 아니라며, 최종 타결 시점은 예측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이스라엘 매체 예루살렘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서 이스라엘·레바논 관계를 담당하는 특사로 활동했다. 이스라엘 매체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 정책보좌관도 지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이번 정상화 움직임이 워싱턴이 아닌 레바논 국민의 요청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레바논 국민이 나에게 ‘평화로 가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1기 행정부 때인 2020년 국무부 대변인으로 재직하며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과 재러드 쿠슈너 당시 중동특사가 이끈 소규모 팀에서 활동했다. 이 팀의 작업은 훗날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모로코 등 아랍권 일부 국가 간 국교 정상화를 이끈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어졌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우리는 이 협정이 몇 세대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백악관에 복귀했을 때도 이런 야심은 이어졌다. 다만 중동 정세는 이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배경에는 10월 7일 사태가 있었다”며 “아브라함 협정 이후 이스라엘과 미국 모두에게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10월 7일 사태란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전면전으로 번진 사건을 가리킨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당시 가자지구 전쟁과 이란 문제 등 여러 위기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레바논 역시 오랫동안 미국 외교의 난제였다. 하지만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변화의 조짐을 봤다고 말했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2024년 9월 헤즈볼라의 급격한 약화였다.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기반 무장정파로, 수십 년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국가 무장조직 중 하나로 꼽혀왔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지도부와 군사 인프라를 집중 타격하면서 조직이 크게 흔들렸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이던 2020년,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를 제거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당시 워싱턴이 이란을 압박할 역사적 기회를 얻었다고 봤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살리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바이든 행정부가 그 기회를 허비하는 걸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2024년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살해했을 때,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즉각 비슷한 기회를 떠올렸다. 그는 “이번에는 이 기회를 허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가 본 기회는 단순히 헤즈볼라를 군사적으로 약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레바논이라는 나라 자체를 바꿀 기회였다. 이 지점에서 오르타구스 전 특사의 레바논 내 인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른바 ‘보이맨’을 그토록 극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면서, 레바논 인사들이 평화와 정상화 가능성에 크게 고무됐다”고 전했다.

수십 년간 레바논 남부에서 최강의 군사력을 행사해온 헤즈볼라는 이란의 가장 중요한 지역 대리세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도부 붕괴 이후 정치 지형이 달라졌다는 게 오르타구스 전 특사의 설명이다. 그는 “헤즈볼라는 큰 골칫거리였고 분명한 안보 위협이지만, 레바논에는 헤즈볼라 말고도 훨씬 많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레바논을 기독교·수니파·이슬람 시아파가 뒤섞여 있고 각 집단마다 헤즈볼라와의 관계와 정치적 역사가 다른 복잡한 사회라고 설명했다.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부가 방치한 공백을 헤즈볼라가 대신 메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르타구스 전 특사는 “레바논 남부에 사는 엄마 입장에서는, 헤즈볼라가 의료·기반시설·자녀 교육을 제공해준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레바논 정부가 이런 책임을 완전히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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