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3일 아랍계 정당 발라드의 사미 아부 셰하데 대표에 대해 10월 27일 총선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직후 무장투쟁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다.
선관위는 이날 예루살렘 크네세트(의회)에서 열린 심리에서 찬성 30표, 반대 4표로 이같이 의결했다. 아부 셰하데 대표는 아랍계 정당연합 ‘공동명단(Joint List)’의 후보 명부 3번이다. 이스라엘 총선은 유권자가 정당 명부에 투표하는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로 치러진다.
선관위는 청원에 담긴 두 가지 출마 금지 사유를 모두 받아들였다. △적국이나 테러 조직의 대이스라엘 무장투쟁 지지 △유대 민주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존재 부정이다.
청원은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이끄는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인의 힘)가 제기했다. 문제가 된 것은 아부 셰하데 대표가 2023년 10월 8일 아랍어로 발표한 기고문이다. 그는 전날 벌어진 하마스의 기습을 “군사적·정치적·전략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또 이스라엘의 허를 찌른 하마스의 성공에서 다른 이들이 배울 점이 있다는 취지로 썼다.
선관위원장인 노암 솔베르그 대법관도 직접 표결에 참여했다. 이스라엘 중앙선관위는 크네세트 정당 대표들로 구성되며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위원장이 표결에 나선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다. 솔베르그 위원장은 아부 셰하데 대표가 하마스의 무장투쟁을 지지했다는 의혹에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야권도 전원 청원을 지지했다. 가디 아이젠코트 전 합참의장의 야샤르,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의 베야하드, 야이르 골란 대표의 민주당,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대표의 이스라엘 베이테누, 베니 간츠 대표의 청백당이다. 간츠 대표와 리베르만 대표는 연정 측의 다른 출마 금지 청원에도 동조하고 있다. 반면 야샤르와 베야하드, 민주당이 지지한 청원은 이번이 유일하다.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법무장관도 이번 청원에만 찬성 의견을 냈다. 그는 22일 의견서에서 아부 셰하데 대표의 출마 금지를 지지하면서 다른 청원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아부 셰하데 대표는 테러 지지 의혹을 부인하며 반발했다. 그는 “나는 폭력이나 테러를 촉구한 적이 없다”며 “무장투쟁에 반대하며 평화와 정의, 평등을 위한 정치적·시민적 투쟁에 헌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 대한 자격 박탈 시도는 아랍 사회의 대표성과 정치적 목소리를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발라드는 아랍계 정당 가운데서도 강경 노선으로 분류된다. 공동명단은 발라드와 아랍계가 주축인 하다시, 타알 등 3개 정당의 연합체다.
아부 셰하데 대표를 대리한 아랍계 인권단체 아달라의 하산 자바린 사무총장도 결정을 규탄했다. 자바린 사무총장은 “기고문에는 폭력을 직접 촉구하는 내용도, 자격 박탈 사유가 될 만한 발언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무장관이 기고문에 10·7 기습에 대한 명시적 규탄이 없다는 점, 즉 쓰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자바린 사무총장은 법무장관이 극우 후보들에게는 더 관대한 잣대를 적용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중대 범죄를 선동한 인물로 벤그비르 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흐 종교시온주의당 대표를 지목했다.
벤그비르 장관은 2007년 인종차별 선동과 테러 조직 지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지난 8월 가자지구에서 매일 밤 “30~40명”을 죽여야 한다고 발언했다. 스모트리흐 대표는 2024년 인질이 돌아오지 않으면 가자지구 주민 200만명을 굶어 죽게 하는 것이 “정당하고 도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날 앞서 하다시 소속 오페르 카시프 의원의 출마 자격도 찬성 19표, 반대 5표로 박탈했다. 카시프 의원은 공동명단 6번 후보로, 명단 내 몇 안 되는 유대인 후보다. 청원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이 냈고, 사유는 아부 셰하데 대표와 같다. 야권에서는 청백당과 이스라엘 베이테누가 동조했다.
카시프 의원 건은 예견된 결과였다. 선관위는 정당 대표들로 구성되고 연정이 과반을 차지해 정치색이 짙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은 2019년에도 카시프 의원의 출마를 막은 선관위 결정을 뒤집은 바 있다.
가자지구 전쟁을 가장 강하게 비판해온 의원 중 한 명인 카시프 의원은 표결 직후 “선관위는 정치 기구이기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며 “대법원이 결정을 뒤집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고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이 전했다. 그는 심리에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자신의 반대를 ‘적 지지이자 국가에 대한 불충’으로 몰아가는 것은 “노골적인 현실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개인 후보의 자격 박탈은 대법원 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생긴다. 정당 명부 전체에 대한 금지 결정은 대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대법원은 그동안 출마 금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선관위 결정을 여러 차례 뒤집었다. 다만 이번에는 솔베르그 위원장과 법무장관까지 찬성한 만큼 대법원이 결정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분석했다.
선관위는 23~24일 이틀간 정당과 후보의 출마 자격 심리를 진행한다. 청원 대부분은 아랍계 정당과 후보를 겨냥하고 있다. 선관위는 이날 오후 만수르 아바스 대표가 이끄는 이슬람주의 정당 라암과 공동명단 전체, 발라드에 대한 청원도 표결한다. 24일에는 오츠마 예후디트와 민주당, 종교시온주의-제후트 명부에 대한 청원을 다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