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신베트 국장, 네타냐후에 명예훼손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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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넨 바 전 신베트 국장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로넨 바 전 신베트(이스라엘보안국) 국장이 14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상대로 300만 셰켈(약 13억원)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바 전 국장은 이날 로드 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냈다. 네타냐후 총리가 2023년 10월 7일 공격 전 자신의 행적과 관련해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도 공표해 책임을 떠넘겼다는 이유다.

소송은 27일 총선을 2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제기됐다. 핵심 쟁점은 네타냐후 총리가 9월 28일 개인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게시물이다. 이 글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바 전 국장의 ‘실패와 범죄’를 비난했다. 바 전 국장은 손해배상과 함께 법원 명령에 따른 정정 또는 부인,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보유한 관련 문서의 공개도 요구할 방침이다. 법원은 소장의 주장에 대해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게시물에서 바 전 국장이 경고 징후를 인지하고도 자신에게 전화해 알리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바 전 국장은 이를 부인했다. 신베트가 확보한 정보를 총리실 군사비서실과 공유했고, 공격이 시작되기 전 군사비서실에 상황을 알리라고 참모진에 지시했다는 것이다. 소장은 군사비서실이 총리에게 보고하고 깨울지를 결정하는 공식 창구라고 설명했다. 바 전 국장은 네타냐후 총리에게서 개인 전화번호를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14일 텔레그램에서 이 설명을 반박했다. 그는 “로넨, 진심인가. 당신은 내 보안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고 안보기관 수장들처럼 즉시 전화할 수 있었다”고 썼다. 신베트 소속 경호원들이 바 전 국장의 부하이며 몇 분 안에 자신에게 닿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제때 전화만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적었다. 정보가 총리실에 닿았는지, 총리 본인에게 닿았는지가 이번 공방의 중심이다.

바 전 국장은 소송에서 신베트의 정보 실패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는 정보를 알면서 숨기고 인명을 구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난만 다툰다는 입장이다. 바 전 국장은 변호인을 통해 낸 성명에서 “국장으로서 10월 7일 공격과 그 시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신베트의 실패에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서 유가족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임했다”고 덧붙였다.

바 전 국장의 퇴진은 해임을 둘러싼 오랜 갈등 끝에 이뤄졌다. 정부는 2025년 3월 20일 전문적 신뢰가 무너졌다며 그의 임기를 끝내기로 표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신뢰 상실이 10월 7일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바 전 국장은 총리 측근이 연루된 수사와 부당한 요구에 저항한 결과라고 맞섰다. 고등법원은 청원을 심리하는 동안 해임 효력을 정지했다.

바 전 국장은 2025년 4월 28일 6월 15일 퇴임하겠다고 밝혔고, 정부는 다음 날 해임 결정을 철회했다. 고등법원은 5월 21일 다수 의견으로 해임 결정이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네타냐후 총리가 측근 수사와 관련한 이해충돌 상태에서 결정했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필수 자문 절차를 우회했고 사실관계 근거가 부족했으며 바 전 국장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갈등의 중심에는 두 건의 수사가 있었다. 하나는 총리 측근들이 전쟁 중 총리실 밖에서 카타르의 이익을 도왔다는 의혹을 다룬 ‘카타르게이트’다. 카타르가 인질 협상 중재국이라는 점에서 민감한 사안이었다. 다른 하나는 군 기밀자료가 독일 신문 빌트에 무단 유출된 사건이다. 바 전 국장은 2025년 4월 진술서에서 이 수사들이 네타냐후 총리의 개인적·정치적 이익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반정부 시위대에 신베트 권한을 쓰려 했다고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부인하며 시위 주도자에 대한 불법 감시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번 소장은 이 주장들로 돌아간다. 소장은 바 전 국장에 대한 공격이 진술서와 연결돼 있다고 적었다. 시위 대응에 신베트를 동원하려 한 시도는 신베트를 ‘비밀경찰’로 쓰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해임 심리 과정에서는 유가족들도 바 전 국장의 책임을 물었다. 4월 8일 심리에서 유가족인 이치크 본젤은 법원의 개입에 이의를 제기했다. 현재 리쿠드 후보인 본젤은 바 전 국장이 실패의 책임을 인정한 만큼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바 전 국장은 10월 7일 이전 수개월 동안 네타냐후 총리에게 여러 전선의 확전 가능성을 거듭 경고했다. 가자지구가 특히 우려됐고 유대교 대축일을 앞두고 경계 수위가 높았다. 그는 하마스 고위 인사를 겨냥한 작전 제안도 올렸으나 총리가 거부하거나 추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23년 7월 23일 통화에서는 총리에게 “전략적 전쟁 경고를 드린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신베트가 정확한 날짜와 시각은 알려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경고는 악화하는 안보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공격의 날짜와 규모, 작전계획을 특정한 정보는 아니었다. 소장도 신베트가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소장은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는 정책을 폈다고 주장했다. 안보기관에 대립을 미루게 하고 가자지구를 부차적 전장으로 두며 하마스의 통치 능력을 유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바 전 국장은 이 정책이 하마스에 대한 공세적 대응을 제약해 하마스가 세력을 키우게 했다고 주장했다. 카타르 자금이 하마스 군사 조직에 흘러간다는 경고가 있었는데도 총리가 유입을 계속 허용했다고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안보 회의 발언과 정보 평가를 발췌해 바 전 국장이 가자지구에 대한 경제적 양보와 자제를 지지했고 임박한 공격을 경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25년 4월 진술서에서는 공격 며칠 전 신베트 평가를 인용했다. 하마스와 새 양해를 맺으면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바 전 국장은 일부 발췌가 자신의 경고와 권고 전반을 가린다고 반박했다. 소장은 2023년 10월 1일 논의 등에서 총리가 표적 제거 준비를 원칙적으로 승인한 적이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실행에 필요한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격 당일 밤의 상황에 대해서도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네타냐후 총리는 바 전 국장이 헤르지 할레비 당시 이스라엘군(IDF) 참모총장, 아하론 할리바 당시 군 정보국장과 여러 차례 통화한 뒤 총리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바 전 국장은 그날 밤 두 사람과 통화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다만 각 기관 관계자들이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소장에 따르면 신베트 요원들은 10월 6일 오후 11시께부터 군 측 카운터파트에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10월 7일 오전 3시 3분에는 하마스의 공세적 활동 징후가 이례적으로 많이 쌓였다는 전자 경보를 배포했다. 소장은 이 경보의 긴급도가 마땅히 부여했어야 할 수준보다 낮게 분류됐다고 인정했다. 신베트가 그날 밤 전면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도 적시했다.

바 전 국장은 총리 군사비서실 정보장교가 밤사이 갱신 정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오전 3시 55분에는 이미 전달한 정보에 주의를 환기하는 후속 통화가 있었다. 그는 오전 5시 15분께 끝난 상황 평가 뒤 참모진에 공격 시작 전 아비 길 네타냐후 총리 군사비서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소장은 바 전 국장의 비서실장이 길 군사비서에게 건 통화를 오전 6시 15분으로 적었다. 길 군사비서는 오전 6시 12분에 깼다고 진술한 것으로 인용됐다. 두 설명 모두 이 시각에 네타냐후 총리 본인이 정보를 받았다는 점은 입증하지 못한다.

소장은 바 전 국장이 지역 긴급대응팀에 경보를 주지 않았고 노바 음악 축제를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비난도 다퉜다. 바 전 국장은 축제가 열리는 줄 몰랐다고 밝혔다. 신베트는 이스라엘군이나 지역 대응팀을 지휘하지 않으며 민간 행사 허가 책임도 없다고 주장했다. 소규모 ‘테킬라’ 작전팀을 보낸 것이 대규모 학살을 사전에 알았다는 증거라는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에도 반박했다. 이런 팀은 가능한 공격에 대응해 정기적으로 투입되며, 파견이 10월 7일 규모의 공격을 예상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분쟁은 전체 기록물에 대한 접근 문제로 번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2월 국가감사원에 대한 답변의 일환으로 55쪽 분량의 설명을 공개하며 안보 회의 발췌본을 제시했다. 바 전 국장은 이 자료가 무엇이 권고되고 결정됐는지 판단할 맥락을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별도로 길 군사비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차히 브라버만 전 비서실장이 10월 7일 아침 통화의 기록 시각을 바꾸려 했다고 주장했다. 브라버만 전 비서실장은 잘못이 없다고 부인했다.

13일에는 전 인질과 유가족 수십 명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공격 전과 당일 아침 안보 회의의 전체 회의록과 원본 녹음, 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군 검열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라는 단서를 붙였다. 서명자에는 전 인질 요체베드 리프시츠와 디차 헤이만이 포함됐다. 아들 마탄이 10월 7일 납치된 에이나브 장가우커, 자녀 사하르·에레즈와 남편 오페르가 함께 인질로 잡혔던 하다스 칼데론도 이름을 올렸다.

바 전 국장은 국가조사위원회가 신베트의 실패와 함께 활동 전반을 조사하길 3년간 기다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이른바 지속적 공세를 이유로 소송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소장은 네타냐후 총리가 의회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게시물이 직무 수행 중 보호받는 행위가 아니라 계획된 개인적·정치적 공격이라는 논리다. 바 전 국장은 “총리는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라”며 “국가조사위원회가 없는 상황에서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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