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강경파 정보수장, 대미협상 파기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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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파로 알려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이란의 정보라인 고위 인사인 호세인 타에브가 지난 7월 미국과의 종전 합의를 뒤엎어 이란 최고위층 내 격렬한 권력 다툼을 촉발시켰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이 13일 이란 관리 5명과 이란 혁명수비대(IRGC) 소속 인사 2명을 인용한 NYT의 심층 취재 내용을 전했다.

이번 폭로로 온건파로 분류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진영이 추진하던 대미 종전 협상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란 최고위층 내 분쟁을 조정할 유일한 권한을 가진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사실상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면서, 강경파가 협상 파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신문은 짚었다.

갈등은 계속 격화하고 있다. 최근 일주일 사이 이란군이 처음으로 미 해군 함정을 공격했고, 미군은 이란 유조선 최소 8척을 파괴했다.

지난 7월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협상을 마무리한 직후였다. 그는 지난해 전쟁 발발 초기 사망한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추모 행사 참석차 이라크를 방문 중이었다.

그때 이란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 3척에 발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공격으로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한 척에 불이 붙었고, 다른 선박들도 피해를 입었다.

분노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아흐마드 바히디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에게 전화해 공격을 “무모하다”고 규정하며 해명을 요구했다고 이란 관리 5명과 혁명수비대 인사 2명이 NYT에 전했다. 바히디 총사령관은 자신도 공격을 승인하거나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란의 최고 안보 의사결정 기구인 최고국가안보회의조차 해당 작전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강경파 일부가 독자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는데도, 이란 지도부 대다수가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즉각 테헤란으로 복귀했지만, 다음 날 아침 미국은 이란에 공습을 가했고 전투가 재개됐다.

이란 관리 3명은 정부와 안보기관의 자체 조사 결과, 7월 상선 공격을 지시한 인물이 애초부터 대미 합의에 반대해온 유력 정보라인 인사 호세인 타에브였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타에브는 새 최고지도자에게 이란이 전쟁을 끝내고 합의에 응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타에브는 이란 혁명수비대 정보조직 수장을 20년 넘게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22년 이스라엘의 이란 보안망 침투와 튀르키예에서의 이란 공작 실패 등 잇단 보안 사고 책임을 지고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에 의해 해임된 바 있다. 이후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다시 전면에 등장했고,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후계자로 세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 진압 등에 동원하는 준군사조직인 바시즈 민병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타에브는 최근 군인 가족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협상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적의 과도한 요구에 굴복하는 협상은 이란 정치에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상선 공격을 누가 지시했는지 캐물었을 때, 현장 지휘관들이 해협 통제권을 침해했다고 판단되는 선박은 중앙의 승인 없이도 공격할 수 있도록 한 기존 지침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평소 공격 후 곧바로 성명을 내던 혁명수비대 산하 최고 군사지휘부 카탐 알안비야 중앙사령부가 이번 7월 7일 공격에 대해서는 끝내 책임을 주장하지 않은 점도, 지도부 내부의 이견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꼽힌다. 이란 당국은 미국과 주변 우방국들에도 공격 직후 같은 설명, 즉 ‘일부 통제 불능 세력’의 소행이라고 전했다.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긴장 완화를 위해 미국과 이란 사이 중재 역할을 오랫동안 맡아온 오만으로 파견됐다.

이후 이란 지도부 내에서는 최근 몇 년 새 가장 격렬한 정치적 충돌이 벌어졌다고 이란 관리들과 혁명수비대 인사가 전했다. 고위 관리들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장성 2명이 사임을 시사했으며, 배신과 반역 혐의를 둘러싼 비난이 파벌 간에 오갔다.

이 여파로 최고국가안보회의 지도부에 개편이 일어났고, 베테랑 정치인이자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인 모센 레자이가 새로 이 기구를 이끌게 됐다. 레자이는 경쟁 파벌들을 중재할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도부 내 분열은 여전하고, 오히려 강경파의 입지는 더 강해진 상태다.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둘러싼 의문도 다시 불거졌다. 그의 행방과 국정 운영 역할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달 그의 장모 타예베 마흐루자데는 한 현지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들조차 하메네이와 그의 세 자녀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의 장인이자 정치인인 골람알리 하다드아델은 지난 7월 이란 언론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보안상의 이유로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신의 뜻이라면 그는 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 5월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만났다고 밝혔지만 시기와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란 관리 2명과 전직 고위 관리 1명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창문을 짙게 선팅한 구급차에 태워져 이동했고, 그 안에서 보안 화상 연결이 이뤄졌다. 화면에는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대리인이라는 남성이 등장해 최고지도자의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정작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후 측근에게 자신이 실제로 최고지도자와 대화한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달 두 번째 면담 허가를 받아 7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 국영TV에 출연해 “생활비 문제, 실업, 제재, 국민 단합, 전시 국가 회복력 등 국가가 직면한 모든 사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다만 면담이 이뤄진 구체적 정황이나 최고지도자의 발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NYT에 따르면 이란의 정치 지도자들과 장성들은 최근 몇 주간 대미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한 두 가지 상반된 전략을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하나는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미군 함정에 타격을 입히고 미군 사상자를 내며 국제 유가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미 공세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다. 두 전략 모두 이란산 원유 수출을 사실상 ‘0’으로 만든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해상봉쇄를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예드 마지드 무사비 이란 혁명수비대 항공우주군 사령관을 비롯한 강경파 장성들은 정면 대결을 주장해왔다. 이들은 최고국가안보회의에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 역내 동맹 세력과 함께 공격을 확대하고, 역내 석유 시설까지 타격 대상에 포함하는 구체적인 전쟁 계획을 마련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략이 실행되면 전쟁이 확대되면서 미국과 동맹국이 치러야 할 경제·군사적 비용도 크게 늘어난다.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대미 협상에 관여해온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이 같은 확전 전략이 이란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고, 더 강력한 미국의 공습과 경제적 압박을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강경파의 주장이 우세한 상황이다.

갈리바프 의장의 수석 보좌관인 마흐디 모하마디는 NYT에 “이란과 미국 간 전쟁이 확전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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