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7일 학살 3주기를 앞두고, 벨기에와 핀란드, 그리고 독일 베를린을 잇는 출장길에 올랐다. 이스라엘이 비극의 3주기를 맞이하며 깊은 슬픔과 추모에 잠긴 상황이었지만, 유럽에는 오싹할 만큼 거센 반유대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이스라엘에 머물며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왔던 나에게, 이번 유럽 순회는 화려한 도시들의 이면에 깊게 뿌리내린 혐오와 증오의 서늘한 그림자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무거운 여정이었다.
소라게처럼 숨어버린 벨기에의 유대인들
첫 목적지인 벨기에 안트베르펜은 런던에 이어 유럽에서 하레디(초정통파 유대인)가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삶의 터전이다. 항구도시로 1700년대부터 다이아몬드 무역을 통해 유대인 커뮤니티의 탄탄한 경제적 기반이 되어주었던 곳이지만, 지금 그 기반은 무섭게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최근 인공(랩) 다이아몬드의 보급으로 전통 다이아몬드 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현지 유대인 사회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침체에 직면해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위기보다 이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일상을 압도하는 ‘물리적 공포’였다. 브뤼셀 최대 유대인 회당 앞은 증오 범죄와 테러를 피하기 위해 입구가 철저히 단절되어 외부에서는 내부의 온기를 전혀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본래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초막절 기간임에도 거리나 베란다에서 초막(수카)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경제적 생존 기반이 흔들리는 와중에 사회적 배척까지 더해지자, 유대인들은 위협을 피해 껍데기 속으로 숨어드는 소라게처럼 잔뜩 위축된 채 숨죽여 살아가고 있었다.
역사적 책임과 연대를 보여준 핀란드의 결단
유럽 내 유대인들의 설 자리가 점차 사라져가는 이 막막한 현실은 자연스럽게 다음 여정지인 핀란드의 역사와 대비되었다. 유럽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인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거센 압력 속에서도 “그들은 유대인이기 전에 핀란드 시민이다”라며 국가 차원에서 자국 유대인들을 끝까지 지켜낸 역사를 가졌다.
물론 나치 게슈타포의 압력에 못 이겨 피난 온 외국인 유대인 8명을 넘겨준 안타까운 비극도 존재했다. 그러나 핀란드 사회,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과오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반성했다. 1980년대 핀란드 봉사자들이 직접 예루살렘으로 찾아와 통나무를 나르며 지은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 ‘야다 시모나(8명을 기억하다 라는 뜻)’가 바로 그 회개의 결실이다. 국가가 압력에 맞서 시민을 지켜낸 결기와, 잘못된 선택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지고 행동한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배척이 팽배한 오늘날의 유럽에 깊은 울림을 던져준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만든 역사의 비극
마지막 목적지 독일 베를린에서는, 나치 집권 12년 동안 유대인 600만 명을 비롯해 자국민과 이웃 국가 시민 160만 명을 죽인 역사적 비극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증언하는 차가운 현장들과 직면해야 했다. 뇌 수술 후 회복 중인 친구 에스더의 안내로 찾아간 ’17번 플랫폼(Track 17)’은 승객용이 아닌 가축 수송용 승강장이었다. 바닥 철판에 새겨진 이송 기록들은, 나치라는 가해자가 유대인이라는 피해자를 사람이 아닌 가축처럼 비인간화하여 사지로 내몰았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빌라들이 늘어선 베를린의 반제 호수가 인근 ‘반제 회의 빌라’는 더욱 섬뜩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1942년 나치 고위 관료들이 모여 유럽 유대인 말살 정책의 실행 방안을 조율한 이곳. 유대인 600만 명 학살을 위한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을 계획한 이곳의 문서 어디에도 ‘학살’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는 없었다. ‘열등한 집단의 정리’처럼 교묘하게 포장된 언어와 미디어를 통한 거짓 선동,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냉담한 ‘방관’이 결합하자 불과 12년 만에 인류사 최대의 비극이 완성된 것이다. 가해자의 악의, 피해자의 무력함, 그리고 다수 방관자의 침묵이 한데 얽혀 빚어낸 참혹한 결과였다.
오늘을 향한 엄중한 경각심
최근 유럽연합(EU)의 이스라엘 제재와 맞물려, 현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마치 1930년대 뉘른베르크 법 제정 당시의 공포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과거의 역사가 경고하듯, 편향된 미디어의 선동과 대중의 무관심이 만날 때 비극은 언제든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거짓 선전과 선동에 속아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지 않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진실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내는 것. 이번 유럽 출장이 전하는 메시지가 《샤아르》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도 경각심의 울림으로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