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달려가 가장 마지막으로 돌아왔다

843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마지막 인질, 故 란 그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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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기자는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 앞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사라, 리브가와 레아가 잠든 곳이다. 약 4천 년 전, 한 사람이 부름을 받아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자리에서, 이 땅의 역사는 지금도 현재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 같은 시각, 가자지구에서는 또 하나의 여정이 끝나고 있었다.

843일 동안 돌아오지 못했던 이름, 란 그빌리. 그는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땅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순간은 우연이라기보다 하늘의 섭리에 가까웠다. 족장들의 묘 앞에 서 있던 그날, 이 땅의 시작을 상징하는 아비들의 품으로, 그 땅을 지키다 쓰러진 한 아들이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란 그빌리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 가자지구로 끌려간 첫 번째 인질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리고 843일이 흐른 이날, 그는 돌아온 마지막 인질이 됐다. 그의 어머니 탈릭 그빌리는 이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First to respond, last to return.”

 

▲ 2026년 1월 26일 가자 한 묘지에서 발견된 故 란 그빌리 하사. 그의 어머니 탈릭 그빌리는 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First to respond, last to return.” (하마스가 침공했을 때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제일 먼저 나섰고, 843일 동안 하마스에 살해되고 가자에 억류되었다가 맨 마지막에 귀환했다.)

 

그의 귀환은 한 가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순간이었고, 동시에 한 나라가 멈춰 있던 숨을 다시 내쉴 수 있게 된 날이었다.

 

무덤 700기를 파헤친 수색… ‘브레이브 하트’ 작전

이스라엘 사회는 843일 동안 란 그빌리의 귀환을 기다렸다. 정보 당국은 한때 그의 시신이 가자 북부의 한 무슬림 공동묘지에 묻혀 있을 가능성을 포착했지만, 초기 정보의 신뢰도는 매우 낮게 평가됐다. 당시 군은 해당 정보가 사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들이 하나씩 배제되고, 추가 정보가 축적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란 그빌리가 그곳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50%를 넘는 수준으로 올라섰고, 그제야 본격적인 수색 작전에 대한 승인 결정이 내려졌다.

 

여기에는 군사적 판단과 하늘의 도우심이 겹친 결정적 배경이 있었다.

약 석 달 전, 현장 병력은 ‘황색선’이라 불리는 이스라엘군의 작전 통제선 범위를 문제의 공동묘지까지 확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지역이 병사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사각지대가 될 수 있고, 하마스가 은폐와 기습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지휘부는 이를 승인했고, 이후 병력은 해당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지하 터널을 파괴하기도 했다.

 

▲ 3개월 전 IDF가 “황색선’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 노란 점선은 원래 ‘황색선’이 있었던 곳이다.
* 노란선은 ‘황색선’이 어떻게 새롭게 변경되었는지 보여준다.
* 두 선 사이에 공동묘지가 위치하고 있고, 빨간선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 땅 아래에, 란 그빌리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작전명 ‘브레이브 하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틀 동안 병력은 무덤 700기를 발굴했다. 군 소속 치과 군의관들은 란 그빌리의 치아 기록을 완전히 암기한 상태로, 250구의 시신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한 군의관은 “모든 시신을 볼 때마다 그의 치아를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1월 26일 오후 2시쯤, 마침내 그를 찾았다. 그는 경찰 제복을 입은 채 신발과 벨트를 착용하고 있었고, 시신은 시파 병원 가방에 담겨 있었다. 현장에 있던 병사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는 없었다. 병사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아니 마아민(나는 믿는다)’을 합창했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가자지구에는 생존자와 시신을 포함해 이스라엘 인질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불길을 향해 달려간 24세 경찰

란 그빌리는 그날 집에 남아 있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24세였던 그는 어깨 골절로 수술을 앞두고 병가 중이었다. 그러나 하마스의 침투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그는 제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문 밖을 나서며 그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만 싸우게 둘 수는 없어요. 어깨가 부러져도 총은 들 수 있거든요.”

 

그는 가자 인근 알루밈 키부츠로 향했다. 노바 음악축제 학살 현장에서 탈출한 민간인들을 발견하고, 부상당한 어깨로 사람들을 반복해서 안전지대로 옮겼다. 그가 구조한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이후 키부츠 방어에 합류해 근접 교전에서 하마스 대원 14명을 사살했다. 손과 다리에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탄약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였다.

전사 후, 하마스는 그의 시신을 가자로 납치해 갔다.

 

“슬픔보다 자부심이 더 큽니다”

란 그빌리의 어머니 탈릭 그빌리는 메이타르 자택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란을 그 저주받은 곳에서 데려온 이들이 하마스도, 중재자도 아닌 이스라엘 병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전우들이 직접 들어가, 직접 찾고, 직접 데려왔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이렇게 덧붙였다.

“슬픔도 큽니다. 하지만 자부심은 그보다 훨씬 큽니다. 이스라엘 국민은 살아 있고, 강합니다.”

 

▲ 2026년 1월 27일, 이스라엘 남부 메이타르. 故 란 그빌리의 장례식에서 그의 어머니 탈릭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스라엘 기자청 (GPO)

 

이스라엘군은 2024년 1월 이미 란 그빌리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지만, 그의 가족은 시신 없이는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아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보내지 못한 시간이 이어졌다. 애도의 문은 열리지 못한 채, 가족과 국가는 긴 시간 멈춰 서 있었다.

 

그의 귀환은 멈춰 있던 시간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만난 정통 유대인 다비드 올레스커는 이렇게 말했다. “2년 넘게 처음으로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바카 동네의 주민 리오라 푸솃은 기자에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10월 7일 이후, 이 나라에는 새로운 의식이 생겼어요. 장례 행렬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국기를 들고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유가족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녀는 란 그빌리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저는 란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메이타르에 산다는 것도, 형제가 오므리와 쉬라라는 것도 몰랐어요. 그런데도 그를 기다렸고, 기도했습니다. 마치 제 형제인 것처럼요.”

 

푸솃은 군인들이 공동묘지에서 시신을 찾았다는 영상과 사진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그들이 울 때 저도 울었고, 노래할 때도 울었고, 경례할 때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집으로 데려올 때, 또 울었습니다.”

 

▲ 란 그빌리의 귀환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그림이다.      ©텔레그렘 / 아미트 시갈

 

이스라엘 땅에 장사되는 중요성

유대 전통에서 이스라엘 땅에 장사되는 것은 삶의 마지막이자 완성으로 여겨진다. 탈무드는 이 땅의 흙 자체가 정화의 힘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이는 개인을 다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사라, 리브가, 레아로 이어지는 계보에 연결하는 행위다.

 

2천 년간 유랑했던 민족에게, 이스라엘에 묻힌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귀환이다.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뿌리를 회복하는 선언이다.

 

하마스는 이러한 존엄성의 가치를 알고 란 그빌리 및 다른 시신들을 가자로 납치해서 숨겼고, 그 의도에 따라 이스라엘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군의관들은 밤을 새웠고, 병사들은 위험을 감수했다. 국가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우리는 누구도 남기지 않는다”

10월 7일 학살로 1,200명 이상이 숨졌고, 공동체가 파괴됐으며, 251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843일 동안 노란 리본이 도시 곳곳에 걸렸고, 인질의 이름이 적힌 군번줄이 수백만 명의 가슴에 매달렸다.

 

인질의 귀환은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적 명령이 됐다. “우리는 누구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이 사회를 지탱한 약속이었다.

 

다전선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마지막 인질이 아비들의 품에 안긴 이날, 이스라엘은 비로소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 2026년 1월 26일, 텔아비브 인질광장에 설치된 ‘인질 시계’가 마지막 인질이었던 故 란 그빌리의 시신의 귀환을 맞이하면서 843일 만에 멈췄다.     ©텔레그렘 / 아미트 시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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