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경제 최악…트럼프 압박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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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회의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피터 헤그세스 미국방장관 (사진=미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추가 군사 공격 대신 해상봉쇄와 제재를 유지하는 경제 압박 전략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미국 보수 성향 방송 리얼아메리카스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을 상대할 두 가지 강력한 전략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꼽은 첫 번째는 이란을 강하게 타격하는 군사 옵션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이 방안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이란이 걸프 지역 석유 시설을 보복 공격할 가능성과 미국의 일부 탄약·요격미사일 부족이 배경으로 꼽힌다.

두 번째는 봉쇄와 제재를 유지해 이란을 경제적으로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이란 내부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300%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통화 가치는 거의 없다”며 “군인들에게 급여를 주지 못해 군인들이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니 계속 밀어붙이면 된다.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경제적으로 그들은 혼돈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는 해외에 동결된 이란 자산도 거론했다. 이란은 이 자금의 해제를 협상 조건으로 요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돈을 빌릴 수도 없다. 우리가 그들의 돈을 통제한다”며 “내가 그들의 은행가”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란과의 대치 수위를 낮추고 있다고 밝히면서, 테헤란과는 제한적인 협상만 진행 중이라고 설명해왔다.

이란 경제는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에 2015년 핵합의에서 탈퇴하며 제재를 복원한 이후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 여기에 경제 운영 실패와 부정부패, 혁명수비대와 중동 각지의 친이란 무장세력에 투입된 막대한 자금이 겹쳤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과 벌인 40일간의 전쟁으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고, 지난 2월 말 시작돼 6개월째 이어지는 현재의 전쟁으로 더 악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 경제가 5.6%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1988년 이후 최대 폭의 감소다. 이란 당국은 연간 물가상승률이 88.6%에 이르렀고 식품 가격은 1년 새 130% 올랐다고 밝혔다.

이란 리알화는 이달 초 달러당 190만리알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후 달러당 188만리알 수준으로 소폭 회복했지만, 전쟁 발발 시점보다 약 20% 낮은 상태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산한 이른바 고통지수도 봄철 91.1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이란 통계 당국은 밝혔다. 1년 전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실업률은 올해 1분기 약 7%로 올랐고, 같은 기간 제조업 일자리 63만개가 사라졌다. 골람호세인 모하마디 이란 노동부 차관은 전쟁으로 인구 약 9200만명의 이란에서 100만개가량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경제 타격의 핵심은 원유 수출 중단이다. 전쟁 전 원유 수입은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약 11%를 차지했다. 수출은 이스라엘·미국과의 교전으로 처음 끊겼고, 이후 미국의 해상봉쇄로 사실상 막혔다. 봉쇄는 4월 13일 시작돼 6월 18일 양해각서 체결로 중단됐다가, 합의가 깨지면서 7월 14일 재개됐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은 이 봉쇄로 이란 경제가 하루 약 4억3500만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추산했다. 재단은 최근 분석에서 이란 경제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봉쇄가 그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단은 미국의 해상봉쇄가 지금까지 동원된 경제 압박 수단 가운데 가장 정밀한 도구로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이런 수치는 수백만 이란 국민의 생활고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단체와 연결된 이란 반관영 통신 일나(ILNA)조차 최근 위기의 실상을 가감 없이 전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상황이 악화될 경우 유류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과거 이 조치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전례가 있다.

알베르트 바게지안 테헤란 소재 경제학 교수는 일나에 이란 경제가 심한 출혈을 겪는 환자와 같다며 “휘발유 가격 충격은 국민 생계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나는 물건값을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는 신용 결제 앱에 의존하는 이란인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테헤란에 사는 29세 남성은 한 번에 값을 다 치를 수 없어 이런 앱 수십 개를 쓴다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들은 급여의 약 40%가 임대료로, 또 다른 40%가 신용 결제 상환에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서비스는 상환이 밀리면 연체료와 벌금을 물린다. 호세인이라는 남성은 “벌금이 계속 쌓인다”며 “돈이 없어 상환이 밀릴까 봐 두려운 게 정말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일나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들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소수에 그쳐, 가벼운 질병만으로도 소득이 끊긴다고 전했다.

주택난도 빠르게 심해지고 있다. 이란 정부 통계에 따르면 건축비는 1년 새 두 배로 올랐고, 이는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테헤란주 등 일부 지방정부가 임대료 인상률을 27%로 제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란 통신사 이스나(ISNA)는 임대료가 계속 오르고 구매력은 약해졌으며 주택 거래는 침체 상태라고 보도했다.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전시에 노동자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산 아자티 바네 건설노조 위원장은 “이란 노동자, 특히 건설 노동자들은 잊힌 채 운명에 내맡겨졌다”며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살아남는 것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아자티 위원장은 바네 지역 건설 노동자의 절반이 건강보험이 없다고 추산했다. 일부는 생계가 막막해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매설된 지뢰밭을 건너 밀수품을 나르는 국경 운반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이란 지도부도 위기의 심각성을 감추지 않고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경제난이 사회 불안을 부를 수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그는 지난달 미국과의 공방이 잠시 멈춘 시기에 경제가 이란의 주된 전장이 됐다고 선언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10일 이란 언론에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7~8시간에 걸쳐 면담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의 모든 현안을 논의했고 당연히 주된 관심사는 국민의 생활 형편과 경제 상황, 고용, 주거, 제재로 인한 문제들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대규모 시위 조짐은 뚜렷하지 않다. 경제난과 물가 급등에 반발해 1월 터져 나온 대규모 시위가 유혈 진압된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란 혁명수비대와 산하 바시지 민병대의 진압으로 시위대 수만 명이 숨졌다고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전했다. 이들 조직은 전쟁을 거치며 영향력을 더 키워 현재 테헤란의 실질적 권력 중심으로 평가받는다.

경제난에도 이란 강경파 지도부가 물러설지는 불투명하다. 이란은 전쟁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5분의 1이 통과하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핵 프로그램에 버금가는 전략 자산으로 보고 있다.

지난주 해협 재개방 합의가 임박했다는 기대가 잠시 커졌지만, 이란은 이웃 오만과의 협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미국에 광범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모흐센 레자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11일 이 요구를 재확인했다.

레자이 사무총장은 “미국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 불안정의 원인”이라며 “미국은 이란에 불법적인 전쟁을 강요해 역내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행동을 바꾸고 이란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호르무즈 해협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이 내건 조건은 전쟁 종료와 동결 자산 해제, 레바논·가자지구를 포함한 역내 교전 중단 등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압박이 정치적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이란 제재 정책을 설계한 리처드 네퓨 컬럼비아대 연구원은 AP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의 전략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네퓨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무력을 어중간하게 쓰고 목표를 불분명하게 말하며 협상에서 주저해 스스로 패를 계속 약화시켰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당국자를 지낸 후안 자라테는 “핵심은 미국이 이란의 석유 거래를 줄이고 제3국을 제재하는 데 어디까지 갈 각오가 돼 있는지, 그리고 경제적 고통이 정권의 행동을 바꿀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있는지”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AP통신에 군사 작전으로 이란의 석유 생산·판매·수송 능력이 이미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봉쇄와 제재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몇 주에서 몇 달 사이 쓸 수 있는 추가 선택지가 있다고 전했다.

경제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부담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통항을 계속 방해하면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은 오랜 강점이던 경제 이슈에서 우위를 잃었다. 민주당은 4월 이 분야에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공화당을 앞섰다. 미국 폭스뉴스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경제를 더 잘 다룰 것이라는 응답이 54%로 공화당(45%)을 앞섰다. 2006년 이후 최대 격차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10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함께한 자리에서 “군사력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를 갖고 있고, 여러 수단을 다룰 줄 아는 의욕적인 재무장관이 있으면 적국에 엄청난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작전을 재개한다면 그 시점은 11월 중간선거 이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 전 교전이 재개되면 공화당의 의회 다수당 사수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 저지가 핵심 목표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면 핵 프로그램에 대한 추가 제약 없이 합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현재 행정부의 최우선 정책 목표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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