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이 전후 가자지구 관리를 위해 미국 주도로 운영되는 민군조정센터(CMCC)에서 영국 관리들을 추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이스라엘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 보도 내용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확인하면서, 영국을 겨냥한 ‘다른 조치’들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과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는 다만 이탈리아와 독일 관리도 추방 대상에 포함됐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 내용은 부인했다.
이번 조치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착촌 확장 계획인 이른바 ‘E1 계획’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영국이 정면충돌하면서 검토되고 있다. E1 계획은 예루살렘과 마알레 아두밈 정착촌을 잇는 지역에 새 주택단지를 짓는 사업으로, 완공되면 베들레헴·동예루살렘·라말라 등 팔레스타인 주요 거주지 사이의 영토적 연결이 끊겨 향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미국 행정부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반대로 오랫동안 보류돼 왔다.
지난주 이스라엘 정부는 E1 지역에 1234가구 규모의 주택 7개 단지 건설 입찰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이미 약 3400가구 건설을 승인한 바 있다.
이에 영국은 서안지구 정착촌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보복성 조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매체들은 27일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정착촌 상품에 대한 전면 무역 금지 조치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타임스는 버넘 총리가 이스라엘 극우 성향 장관들과 개별 정착민에 대한 제재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은 이미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흐 재무장관에게 제재와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한 상태다.
이스라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기데온 사르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최근 에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에 대한 제재성 조치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 소식통은 영국 관리 추방보다 더 강도 높은 조치들도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밀리밴드 장관은 지난주 성명을 통해 E1 계획을 “용납할 수 없고 파괴적”이라고 비판하며, 불법 정착촌 확장에 관여한 인사들에 대한 제재를 포함한 ‘포괄적 대응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사르 장관은 밀리밴드 장관의 발언을 “훈계조”라고 반박하며, 영국 정부가 영국 내 유대인 사회를 겨냥한 반유대주의 공격의 물결을 부추기고 양국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당 내 친이스라엘 성향 단체인 ‘이스라엘을 위한 노동당 벗들’은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무역 금지 조치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단체는 이스라엘이 자국 영토로 병합해 수도의 일부로 간주하는 동예루살렘 등에서도 이스라엘 주요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사실상의 보이콧’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단체 대변인은 텔레그래프에 오는 10월 27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이런 조치가 시행되면 이스라엘 우파의 ‘포위 심리’를 자극해 정권 교체를 노리는 야권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약 140명은 이미 무역 금지를 지지하는 서한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 사안은 다음달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영국 정부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정착촌 계획에 대한 영국의 강경한 입장에 어떤 형태로든 ‘보복’이 있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안과 관련해 독일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고, 이탈리아 관리는 자국 인사가 추방 대상이라는 보도 내용을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정통한 인사 2명은 이스라엘이 국제 관리들을 센터에서 퇴출하려면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의 승인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이스라엘이 자국 영토 내 체류자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센터는 이스라엘 남부 키르야트가트에 있다. 평화위원회 측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이스라엘 측과 계속 협의하며 다자간 조정 체계를 강화하고 가자지구 평화안 이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사르 장관은 지난 26일 네덜란드의 잇따른 ‘반이스라엘 조치’를 이유로 네덜란드 대표단을 이 센터에서 추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버넘 총리는 지난 7월 20일 취임한 이후 전임 키어 스타머 총리보다 이스라엘에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해왔다. 그는 앞서 노동당 대표 선거 유세 영상에서 무기 수출 제한과 서안지구 정착촌에 대한 추가 조치 등을 통해 영국이 이스라엘 정부에 더 강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