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논의가 후티 반군의 공세와 이스라엘 총선, 팔레스타인 국가 문제라는 걸림돌에 직면했다고 미디어라인이 21일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혀 정상화 논의에 다시 불을 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우디도 그럴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에 매우 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사우디-이스라엘 정상화가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이 발언만으로는 사우디가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는지, 공개적 안보 협력에 합의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사우디는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의 공세 강화에 직면해 있다. 후티의 미사일과 드론은 공항과 석유시설, 해상 운송을 겨냥했다.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국제공항 공격으로 13명이 숨졌고, 후티는 8일 이 공항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공격이 반복되면서 항공 운항에 차질이 생겼고, 경제개발 계획의 핵심 기반시설을 지킬 수 있느냐는 우려가 커졌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군사 지원을 받아들이면 정치적 대가가 따른다. 국내 여론은 물론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어진 전쟁의 영향을 깊이 받은 아랍권 전체에서 파장이 일 수 있다. 요엘 구잔스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수석연구원은 미디어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예멘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접촉이 있었다”고 말했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걸프 프로그램 책임자다. 그는 “이스라엘이 후티 문제를 돕고 싶어 했지만 사우디는 여론 때문에 공개 접촉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9월 30일 이스라엘행 플라이두바이 항공기가 조종석 공격을 받은 뒤 사우디에 비상착륙했다. 이스라엘은 자국 승객을 데려오기 위해 군용기 착륙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사우디는 이를 거부했다. 승객들은 다른 플라이두바이 항공기를 타고 돌아갔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사우디는 최소한만 했고 어떤 정상화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주도 공격 이전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재하는 정상화 합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후 가자지구 전쟁과 파괴로 공식 관계 수립은 훨씬 논쟁적인 사안이 됐다. 사우디는 합의에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는 신뢰할 만한 경로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현 정부는 이 조건에 반대해 왔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10월 7일 이후 아랍 세계는 이스라엘에 크게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공식적으로 중심에 놓인 것은 아랍 정부들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두 정부가 협력 분야를 더 찾더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큰 장애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사회 차원에서 공통분모가 없다. 사우디 여론은 이스라엘에 반대하고 있으며 이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릴 비더쇼벤 블루워터스트래티지 수석 고문은 안보 위기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경제적·정치적 도전이 된다고 분석했다. 미디어라인은 사우디의 개발 계획 ‘비전 2030’이 외국인 투자와 기반시설 확장, 안정적인 사업 대상지라는 이미지에 크게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공항과 항만, 에너지시설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면 이런 구상이 위협받고 국방·재건 비용도 늘어난다. 비더쇼벤 고문은 비용 증가와 불안이 왕세자에 대한 국내 비판을 부를 수 있다며,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가 더 민감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적 여파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사우디의 대표 행사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컨퍼런스 주최 측은 19일 26~29일로 예정됐던 행사를 2027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후티의 치명적 공격과 안보 우려가 커진 뒤 나왔다. 다만 주최 측은 공격을 이유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군사적 여건도 부담이다. 사우디는 10년 넘게 후티와 싸워 왔지만 반복된 공습에도 후티의 국경 너머 타격 능력과 홍해 해상 위협 능력을 없애지 못했다. 비더쇼벤 고문은 “사우디가 군사적으로 후티를 분쇄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타격은 줄 수 있어도 예멘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잠재적인 아프가니스탄이나 베트남 시나리오와 같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직접 군사 개입을 하면 이란과 역내 동맹 무장세력의 대응을 불러 대결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비더쇼벤 고문은 “이스라엘에는 도움은 제안하되 병사는 빼라고 말하겠다. 아랍 문제는 아랍인들이 다루게 하자”고 말했다.
사우디는 정치적으로 더 수용하기 쉬운 지역 파트너에게 지원을 구하고 있다. 이집트 국가방위위원회는 18일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 주재로 사우디의 후티 공격 방어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사우디 국방장관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도 만나 예멘 문제를 둘러싼 오랜 이견에도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사우디는 예멘 문제에서 지금 에미리트가 필요하다. 이는 일시적인 것이며 경쟁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튀르키예는 20일 사우디, 파키스탄과 맺은 메카 공동방위합의를 의회에 제출해 비준을 요청했다. 8월 서명된 3개국 합의는 서명국이 무력 공격을 받으면 상호 방어하도록 규정한다. 튀르키예 당국자들은 사우디 지원에 군사 장비와 정보 공유가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튀르키예군의 해외 파병에는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영국도 20일 공군 타이푼 전투기가 사우디 영공에서 방어 초계 임무를 수행한다고 발표했다.
비더쇼벤 고문은 이집트와 UAE를 잠재적 파트너로 꼽았다. 그는 튀르키예·파키스탄과의 합의가 실제 작전 공약으로 얼마나 이어질지에는 의문을 나타냈다. 공식 외교 관계와 비공식 접촉은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대표가 공개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다. 비더쇼벤 고문은 “리야드와 예루살렘 사이에 공식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공식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27일 총선을 치른다. 2023년 10월 7일 공격 이후 처음 열리는 전국 단위 선거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새 연정을 꾸릴 수 있을지, 야권이 대안 정부를 구성할지가 이번 선거에서 결정된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이번 선거는 결정적이다. 현 야권으로 구성될 새 정부는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가 “아랍 세계에서 좋게 평가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비더쇼벤 고문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그는 사우디가 관계 강화를 꺼리는 이유가 부분적으로 네타냐후 총리 개인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비더쇼벤 고문은 “비비 네타냐후가 집권하는 한 성사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사우디의 현재 정서는 반이스라엘이 아니라 반네타냐후”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사우디의 핵심 외교 조건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야권 주요 후보인 가디 아이젠코트는 두 국가 해법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를 대체하려는 다른 정당들도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와 정착촌, 협상에 대해 입장이 크게 다르다. 총리 교체를 위해 뭉친 야권 연합이 사우디의 요구를 충족할 정책에 자동으로 합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미디어라인은 분석했다.
미국도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로이터/입소스가 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1%로 두 번의 임기를 통틀어 가장 낮았다. 미국인들은 높은 휘발유 가격과 이란과의 전쟁이 가져온 경제적 여파에 불만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네타냐후 총리의 재선 도전을 지지했다. 미디어라인이 인터뷰한 전문가 2명은 다른 이스라엘 정부가 사우디와 관계 개선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디어라인은 이번 지지 선언이 워싱턴의 당면한 정치적 동맹과 아브라함 합의 확대라는 장기 목표 사이의 잠재적 충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트럼프는 사우디와의 정상화를 수사적으로는 계속 밀어붙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 중간선거는 이란의 셈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 고위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전에 정치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도록 미국과의 협상을 의도적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비더쇼벤 고문은 이란이 대규모 군사 공세 없이도 해상 운송 위협과 보험료 상승, 역내 불안으로 적대국을 계속 압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은 장기전을 하고 있다. 2년, 3년, 5년도 버틸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사우디로서는 불안이 이어질수록 지역 안보 체제를 강화할 유인이 커진다. 그러나 공동의 위협도, 이스라엘 지도부 교체 가능성도 정상화의 외교적 장벽을 반드시 넘게 하지는 못한다고 미디어라인은 분석했다. 구잔스키 연구원은 “이스라엘의 새 정부가 사우디와 새로운 회담을 추진할 수는 있지만 야권도 팔레스타인 국가를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