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정세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레반트 5개국 한인 리더들이 지난 3~5일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레반트지역 한인리더스 포럼을 열었다.
레반트는 지중해 동쪽 연안 지역을 통칭하는 말로, 반세기 넘게 전쟁과 분쟁이 이어져 온 곳이다. 이곳 한인들에게 갑작스러운 교전과 대피는 한두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만큼 대응도 축적돼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에 정부와 대사관의 대응에 더해, 교민들이 스스로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하나 더 만들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그 결실로 지난해 이집트 다합에서 이스라엘·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집트, 레반트 5개국 연합회가 결성돼 첫 모임을 가졌고, 올해 예루살렘에서 공식 포럼이 열리게 됐다. 이번 포럼은 각국 정세를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 국경을 넘는 상호 협력 방안과 차세대 교육 연대를 논의하는 실질적 합의의 장이 됐다.

위기의 정의부터 다시 세우다
참가자들은 그동안 한인 사회 안에 위기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가 없어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처가 어려웠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따라 위기 유형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개인의 사고나 갈등 같은 개인적 위기, 조직 내부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점진적 위기, 전쟁과 대규모 피난 같은 집단적 위기, 팬데믹과 지진 등 환경적 위기 네 가지다. 평상시와 비상시 모두 작동하는 실시간 위기관리 시스템을 만들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
이강근 이스라엘 한인회장 겸 레반트 5개국 연합회장은 정부나 대사관의 사후 대책에만 기대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웃 국가 한인회끼리 메신저 카카오톡과 전화로 실시간 연락망을 밀착 가동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선제적 예방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나라마다 다른 위험, 다른 준비
각국 대표들은 이어 현지 안보 실태를 공유했다. 같은 레반트라도 나라마다 위험의 성격과 대비 수준이 달랐다.
요르단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드론과 미사일의 주요 통로에 놓여 있다. 장한주 요르단 한인회장은 미군 기지 타격과 수시로 이어지는 드론·미사일 침투로 안보 등급이 격상된 현실을 전했다.
시리아는 2011년 내전 이후 공식 거주 기록조차 끊긴 상태다. 현재 요르단에 거주하는 안주현 시리아 교민 대표는 향후 국경이 다시 열려 교민과 기업인이 유입될 때를 대비해, 한인이 주도하는 예방적 안전 네트워크를 미리 구축해 두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위험을 실제보다 높게 잡은 대응이 교민에게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레바논 측이 그 사례를 꺼냈다.
레바논 측은 대사관의 일방적인 강제 대피 권고와 교민이 실제로 느끼는 생업 사이의 격차를 짚었다. 김성국 레바논 교민 대표는 베이루트 공항에 국적기와 외항사가 취항하고 있는지를 가장 확실하고 객관적인 안전 지표로 삼자고 제안했다. 항공사들이 노선을 유지하는지 여부가 현지 위험도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또한 생업과 터전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출국을 종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 사정을 반영한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흩어진 한글학교를 하나로
레반트 지역 한글학교들은 교민 수 감소와 재정·인력 부족으로 상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나라별로 학교를 단독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고민이 이어져 온 이유다.
참석자들은 그 돌파구로 중동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 시스템에 논의를 모았다. 레반트라는 하나의 틀 아래 규모 있는 통합 한글학교를 조직하고, 이스라엘·레바논·요르단 등 각국 한글학교는 이 연합체의 분교나 개별 교실처럼 연동해 운영하자는 구상이다. 이렇게 규모를 키우면 개별 학교 단위로 신청할 때보다 대한민국 재외동포청으로부터 예산과 전문 교육 프로그램, 우수한 교사 인력을 훨씬 체계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봉섭 지구촌 한글학교 미래 포럼 공동대표는 정부 동포청과 한인 사회 간의 상호 신뢰가 교육망 구축의 기본 토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외동포재단 부장을 지낸 김 대표는 학생이 아무리 많아도 가르칠 교사가 없으면 학교가 존재할 수 없다며, 전 세계 한글학교 교사 자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집트에서 교민 자녀를 가르치는 하성배 이집트 한글학교 교장은 한국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성장하려면 해외 지사 주재원과 공무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인 가정까지 포괄하는 차세대 정체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하 교장은 한 나라의 미래는 결국 차세대 교육에 달려 있다며 한글학교가 더 체계적으로 지원받고 조직화될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늘의 회의가 내일의 정책”
청년 세대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헌재 히브리대 한인학생회장 겸 민주평통 청년자문위원은 오늘의 회의가 결국 내일의 정책을 만들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그 정책의 혜택을 직접 받는 당사자가 다음 세대인 만큼, 포럼 자체가 청년들에게 큰 힘과 배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유학생과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회의가 앞으로 더 자주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강근 회장은 이번 포럼으로 확인된 초국적 연대가 재난을 함께 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갈등과 단절 속에 살아가는 720만 재외동포 사회에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