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공격이 이슬람 최고 성지 메카 주변까지 번지면서, 지난달 사우디가 튀르키예·파키스탄과 맺은 방위협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지시간 화요일 메카와 제다, 그리고 타이프에서 이번 교전 국면 들어 처음으로 공습경보가 울렸다.
같은 날 새벽 1시쯤에는 아브하와 카미스 무샤이트에서도 경보가 울렸고, 이후 알울라·자잔·아브하·제다·타이프·얀부 등지로 경보가 잇따랐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예멘 정부 지원 연합군의 투르키 알말리키 대변인은 후티가 계속 사우디 영내 민간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카미스 무샤이트와 아브하, 타이프에 대한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민간인 13명이 경상에서 중경상을 입고 주택 7채와 차량 2대가 파손됐다고 전했다.
이번 공격은 후티가 사우디의 예멘 내 공습을 이유로 보복을 예고한 직후 벌어졌다. 특히 메카에 경보가 울렸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이다. 메카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출생지이자 이슬람 최고 성지 카바가 있는 도시로, 지난달 사우디와 튀르키예, 파키스탄이 이곳에서 서명한 방위협정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메카협정’에 따르면 세 나라 중 한 곳에 대한 공격은 나머지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정작 위기가 닥치자 튀르키예와 파키스탄 두 협정 상대국은 군사적 지원이 아닌 유감 표명 수준에 머물렀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지난 주말 리야드와 메디나 지역의 동서 송유관을 겨냥한 드론 공격을 강하게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이 공격으로 송유관이 파손되고 민간인이 다쳤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과 사우디의 주권·영토 보전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역내 평화와 안보,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밝히며 사우디의 주권과 영토 보전, 안보, 번영에 대한 확고한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튀르키예도 송유관 공격 이후 비슷한 규탄 성명을 냈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라크에서 발진한 드론이 사우디 영토를 공격한 데 대해 “사우디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지하며, 역내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한 사우디 당국의 자제된 대응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하루 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사우디 정부는 양측이 역내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했으며, 샤리프 총리가 후티의 공격을 규탄하고 사우디의 자제를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에서 걸프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요엘 구잔스키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회의(NSC) 관리는 메카 주변 경보에 이례적인 상징성이 있다고 짚었다. 구잔스키는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과의 인터뷰에서 “이곳은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불과 한 달 전 사우디를 보호하기 위한 ‘메카동맹’이 서명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맹에 서명한 나머지 두 나라, 즉 파키스탄과 튀르키예가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 있다”며 “협정이 아직 비준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 변명 중 하나인데, 이는 적어도 튀르키예와 파키스탄 쪽에서 이 협정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구잔스키는 사우디가 이런 상황에 실망한 나머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에게 지원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것이 재앙”이라며, 후티 세력과의 아랍에미리트군 축출, 아랍에미리트 편에 선 세력에 대한 사우디의 공격, 호데이다와 사나 재탈환 위협, 국경 지대 병력 증강 등 일련의 사우디의 행보가 현재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7월 말 사우디의 이라크 내 공격에 이어 동서 송유관 공격이 이어졌고, 후티의 예멘 내 진격으로 이 세력이 사실상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장악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구잔스키는 “이는 전략적 굴욕이자 사우디 군사력의 심각한 실패”라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빼앗겼고, 사우디의 원유 수출은 이제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양쪽에서 막혀 있으며, 후티는 홍해 북부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잔스키는 이스라엘이 사우디를 은밀히 지원해야 하지만, 이스라엘 자신이 공격받지 않는 한 후티를 상대로 독자적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티가 지금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우리를 공격할 명분을 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원에 미사일방어 능력이 포함될 수 있지만, 사우디가 곤란해지거나 역내 반발이 커지지 않도록 조용히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방어체계가 다른 무슬림들의 공격으로부터 메카와 메디나를 지켜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다른 어떤 성과보다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잔스키는 이스라엘이 사우디와의 관계 정상화를 지원의 조건으로 내걸어서는 안 된다며 “우선 지금, 조용히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이스라엘 해군을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배치해 교전에 직접 휘말리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후티 간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약 4년간 소강 상태였던 예멘 내전도 다시 불붙었다. 후티군은 지난주 예멘 남서부 해안 지대를 빠르게 장악하며 세계적인 해상 요충지 중 하나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사실상 통제하게 됐다. 이로 인해 대규모 피란이 발생했다. 유엔난민기구는 화요일 예멘 내에서만 10만명 이상이 피란했으며, 수천명이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지부티로 피신했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는 “치안 불안과 도로 파손, 통신 두절, 이동 제한 등으로 인도적 지원 접근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로서는 이번 공격이 단순한 방어 역량의 문제를 넘어, 메카에서 서명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공동방위 약속이 말뿐인 선언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를 시험받는 상황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