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다음 달 27일 총선을 앞두고 아랍계 주요 정당 2곳의 출마를 금지했다. 대법원이 이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 민주주의에 남긴 상처는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지난 23일 아랍계 정당 연합인 ‘조인트 리스트(Joint List)’과 이슬람계 정당 ‘라암(Ra’am)’의 총선 출마를 각각 찬성 18표, 반대 5표로 금지했다. 선관위는 두 정당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무장투쟁을 지지하고, 유대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봤다. 두 정당은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을 대표하는 핵심 정당이다.
중앙선관위라는 이름을 들으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독립기관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 선거 실무를 맡는 사무국은 중립적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번 금지 결정을 내린 전체회의는 정치인들로 구성돼 있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우파 연정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위원장은 노암 솔베르그 대법관이 맡고 있다.
정당의 출마 자격은 대법원이 최종 결정한다. 대법원은 이번 주 안에 선관위 결정을 뒤집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2019년 아랍계 정당 발라드-라암 연합의 출마 금지를, 2022년에는 발라드의 출마 금지를 각각 뒤집은 바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출마 금지가 최종 확정된 정당은 극우 인사 메이르 카하네가 이끈 정당 하나뿐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 정치의 오랜 패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극단적인 법안이나 조치가 크네세트(의회)에서 초기 동력을 얻어 국제적 논란과 규탄을 부르지만, 결국 폐기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네타냐후 총리 집권 이후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비유대인 신규 시민권자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하는 2010년 ‘충성서약법’, 유대교 개종 권한을 최고랍비청에 일원화해 해외 유대인 사회의 반발을 산 같은 해 ‘개종법’이 대표적이다. 야간에 이슬람 사원 확성기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2017년 ‘무에진법’, 크네세트가 단순 과반으로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할 수 있게 한 2023년 ‘무효화 조항’ 법안도 모두 법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무에진법은 수정된 형태로 몇 달 전 크네세트 1차 표결을 통과했다.
이 매체는 이런 현실이 두 가지 시선을 낳는다고 짚었다. 이스라엘 정치를 잘 아는 이들은 극단적 법안이 대부분 좌초되는 것을 민주주의의 ‘면역 체계’가 작동하는 증거로 본다. 반면 후속 과정을 따라가지 않는 외부 관찰자들은 첫 보도만 보고 이스라엘을 반민주 국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금지 결정에 찬성한 연정 측도 결정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법원이 현상을 유지해줄 것이라 믿고, 지지층 결집과 아랍계 정당에 대한 흠집 내기를 위해 민주적 권리를 가볍게 다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논쟁적 법안이 폐기된 것은 아니다. 2018년에는 이스라엘을 ‘유대 민족의 민족국가’로 규정한 기본법인 ‘민족국가법’이 통과됐다. 비판론자들은 이 법이 아랍계와 드루즈계 시민을 소외시키고 차별한다고 지적했지만, 대법원은 위헌 청원을 기각했다.
2023년 무효화 조항 법안도 전국 고속도로를 마비시킨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 끝에야 멈췄다. 사법부 권한을 줄이려는 시도는 이후에도 여러 법안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올해 크네세트 휴회 직전에는 법무장관(검찰총장 격)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 초정통파 유대교도(하레디)의 병역 면제를 지키려는 하레디 정당들의 요구를 반영한 법안들이 잇따라 통과됐다. 치명적 테러로 유죄 판결을 받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사형을 의무화하는 법도 국제적 비판 속에 통과됐다.
이번 사태는 대법원이 사실상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치라는 점도 다시 보여줬다. 네타냐후 정부는 수년간 대법원 권한 축소를 추진해왔다. 연정 내 극우 정당인 종교적 시온주의당은 재집권하면 더 강도 높은 사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도 최근 선거 관련 대법원 판결이 연정에 불리하게 나오자 사법개혁을 완수해 “소수 판사 집단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전례를 깨고 금지 결정을 유지하면 이스라엘 최대 소수집단인 아랍계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정당에 투표할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과 지지자들은 수십 년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비판에 맞서 아랍계 정치인들의 크네세트 활동을 반박 근거로 제시해왔다. 아랍계 정당이 출마조차 못 하게 되면 이 논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다음 선거에서 선관위가 또다시 아랍계 정당 출마를 금지할 때, 대법원이 여전히 이를 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