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대장, 수파서 하마스 저지

Share

오르 벤예후다 중령 (사진=이스라엘군)

오르 벤예후다 카라칼대대장(중령)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기습 당시 이스라엘 남부 수파 초소 일대에서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무장대원 수백 명의 진격을 저지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7일 자사 탈 슈나이더 외교·정치 담당 기자의 신간 ‘이스라엘의 여전사들’ 발췌문을 영어로 번역해 실었다.

예디오트 북스가 펴낸 이 책은 슈나이더 기자의 첫 저서다. 발췌문은 벤예후다 중령이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당시 상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벤예후다 중령은 유대교 명절 심하트 토라인 2023년 10월 7일 오전 6시 29분 이집트 국경 철책을 따라 대대장 지프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날 계획은 구역을 점검하고 국경의 평온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10번 도로의 게이트를 열어 연휴 탐방객을 맞는 일정도 있었다.

카라칼대대는 남녀 혼성 부대다. 이집트·가자지구·이스라엘 국경 접합점에서 니차나 초소까지 약 40㎞ 구간을 방어한다. 본부는 케치오트 인근 나할 라비브에 있다.

벤예후다 중령은 이날 오전 5시에 일과를 시작했다. 2014년 교전에서 부상한 뒤로는 필요 이상의 장비를 갖추고 현장에 나섰다. 지프 트렁크에는 대전차미사일 LAW 3발이 실려 있었다. 동료들은 조용한 이집트 국경에 이런 장비가 왜 필요하냐며 그를 놀렸다.

첫 로켓이 이스라엘 영토로 날아오고 사이렌이 울릴 때 벤예후다 중령은 요나탄 초르 나할 정찰대대장(중령)과 통화 중이었다. 인접 구역을 맡은 초르 중령은 ‘바르나쉬’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는 안식일 근무로 수파 초소에 머물던 부하들이 공격받고 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며칠 전 연습한 대응 방식을 가동하기로 했다. 초르 중령이 철책을 맡고, 벤예후다 중령이 수파 인근 농업 공동체를 방어하는 방식이었다.

벤예후다 중령은 국경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모샤브 아브살롬 인근 스나이 초소에서 로켓 직격 보고를 받았다. 그는 구급대원 1명, 의무병 2명, 운전병 1명으로 구성된 대대 의무팀의 구급차를 병력에 더했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초르 중령은 다시 전화를 걸어 수파가 함락됐고 초소와 기념비에 무장대원이 있다고 알렸다.

초르 중령은 이어 휴대전화 메신저로 자신의 장교들 연락처를 보냈다. 곧 음성 메시지도 남겼다. 그는 “오르치카, 조심해. 주변에 무장대원이 엄청나게 많아. 시속 200㎞로 가고 있어. 곧 보자”고 말했다.

232번 도로로 접어든 벤예후다 중령은 키부츠 홀리트 입구 인근을 지났다. 당시 이곳에서 무장대원이 학살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가 오전 7시 45분 수파 초소 인근에 도착했을 때 대전차 무기에 피격된 장갑차가 도로변에 뒤집혀 있었다. 장갑차에서 나온 나할 정찰대대 병사들은 중상 또는 경상을 입은 채 주변에 쓰러져 있었다. 의무팀 여성 대원들은 구급차에서 뛰어내려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나할 정찰대대원 약 30명이 초소 식당에 갇혀 총격과 수류탄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로이 샤펠 나할 정찰대대 부대대장(소령)은 인근 단구르 기념비에서 교전 중이었다. 이 기념비는 1948년 니림 키부츠 전투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세워졌다. 이날 샤펠 소령과 에얄 클라인 대위, 토메르 미즈라히·다니엘 베즈고도프 중사 등 4명이 이곳에서 숨졌다.

현장 최고 계급 장교였던 벤예후다 중령이 지휘권을 잡았다. 수파는 이미 1시간 동안 공격받은 상태였다. 그는 초소 정문에 고립된 하사에게 연락해 병사 2명이 총상을 입은 것을 확인했다. 부상병들은 탄약이 거의 없었다. 그는 지프에 있던 탄약 상자를 건넸고, 초소 진입로와 식당 위치 등을 파악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병력을 셋으로 나눴다. 한 팀은 단구르 기념비로 보내 무장대원의 초소 진입을 막게 했다. 다른 팀은 초소 밖 과수원을 향한 외곽 진지에 배치했다. 나머지 한 팀은 대대 부중대장과 함께 직접 이끌었다.

벤예후다 중령은 이 팀과 장갑 지프 2대로 초소에 진입해 갇힌 병사들을 구출하기로 했다. 그는 콘크리트 장벽 사이를 지그재그로 뛰었다. 토치카에서 나온 누크바 대원이 사격했지만 맞지 않았다. 지프 한 대는 식당 쪽으로 돌진했고, 다른 한 대는 사격을 유도하려고 옆으로 빠졌다. 벤예후다 중령은 걸어서 진입했다. 그는 “그때까지 무장대원을 눈으로 본 적이 없었는데 초소 안에 그들이 서 있었다”고 말했다.

무장대원들은 군복과 조끼를 갖추고 대전차 로켓(RPG) 장비를 멘 채 총격을 퍼부었다. 로켓 한 발이 지프 지붕을 스쳤고,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벤예후다 중령은 철수를 명령했다. 운전병 한 명이 발에 총을 맞아 피를 흘렸다.

벤예후다 중령은 높은 흙 둔덕에 올라 전체 전황을 살폈다. 드론을 띄우자 초소 외벽에 붙어 아군의 진입을 기다리는 무장대원들이 보였다. 가자지구 방향 접근로에는 픽업트럭 2대, 오토바이 약 10대에 나눠 탄 20명, 나무 사이에 숨은 대열, 그 뒤를 따르는 가자 민간인이 있었다. 샤마르 라비브 파란지역여단장(대령)은 무장대원 50명과 교전 중이라고 알려 왔다. 벤예후다 중령은 “여단장님, 저는 500명과 교전 중입니다”라고 외쳤다.

벤예후다 중령은 당시 둔덕 위 병력이 남녀 전투병 12명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이들에게 사과했다”고 말했다. 뒤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부하들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선 그는 웃으며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지프에서 LAW 1발을 꺼냈다. 병력이 발사한 미사일은 무장대원들의 픽업트럭에 명중했다.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충격파가 주변 인원을 날려 보냈다. 불탄 트럭은 인근 무장대원들 위로 떨어졌다. 피격을 면한 이들은 달아났다. 이후 병력은 기관총과 LAW 2발, 개인화기로 장시간 교전해 무장대원의 진격을 멈춰 세웠다.

벤예후다 중령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들은 이집트 국경을 따라 안쪽에 있는 브네이 네치림과 나베로 가려 했다”며 “저지하지 못했다면 그 마을들에 닿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지원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대대장 과정에서 알게 된 공군 비행대장에게 전화했다. 그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 있으니 공격헬기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오전 10시 15분 조종사가 오는 중이라고 연락했으나 도착 직전 다른 지역으로 돌려졌다.

그 무렵 이도 비톤 제77대대 중위가 지휘하는 전차 1대가 인근에 나타났다. 비톤 중위는 이른 아침부터 싸우며 키부츠 니르 이츠학 방어에 가담해 무장대원 약 180명을 제거한 상태였다. 탄약이 떨어져 가던 그는 수파 초소 쪽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비톤 중위는 훗날 벤예후다 중령에게 “몇 시간 만에 갑자기 아군이 보였다. 하마스가 정신이 나가 여성 무장대원을 보낸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벤예후다 중령은 전차에 합류를 요청하려고 서쪽으로 뛰다가 도로로 나서는 순간 무장대원과 맞닥뜨렸다. 두 사람은 서로 총을 쐈고, 벤예후다 중령이 먼저 쏴 쓰러뜨렸다. 무전망이 마비돼 교신이 불가능했다. 그는 기갑부대 훈련에서 쓰는 수신호로 전차를 세우고 상황을 설명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부중대장과 무전병이 RPG에 맞아 하반신을 다치자 의무팀이 마련한 응급 처치소로 옮겼다. 구급차는 후송 헬기가 뜨는 아브살롬 인근 착륙장까지 수 킬로미터를 오갔다. 정오 직후 벤예후다 중령은 공격헬기를 불러 휴대전화로 유도했다. 그는 과수원과 초소 외벽, 식당을 제외한 초소 내부 지점에 사격하도록 했다.

오후 1시 해군 특수부대 샤예텟 13 대원 40명 지휘관이 곧 도착한다고 연락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드론으로 초소 안 무장대원 위치를 찾아 알렸다. 이어 나할 정찰대대원 약 30명, 제50대대 박격포 소대원, 관측기구 운용병 2명이 생존한 채 걸어 나왔다. 약 6시간 동안 갇혀 있던 이들은 모두 부상했고 일부는 속옷 차림이었다. 벤예후다 중령은 “그때 지휘관이자 전투원이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기념비 인근에서 숨진 병사들에게 다가가 눈을 감기고 뺨을 쓰다듬었다. 그는 살아 나온 대원들이 지휘관과 동료의 모습을 보지 않도록 하려 했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초르 중령 대신 부임하러 온 중령이 도착했다. 이 중령은 초르 중령이 마온 교차로에서 무장대원 조의 공격을 받고 숨졌다고 전했다. 초르 중령은 아침의 약속대로 벤예후다 중령과 만나지 못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이날 노바 음악 축제에서 민간인을 구하려다 숨진 아브라함 호벨라슈빌리 부대대장(소령)과 사촌 이타마르 벤예후다 골라니여단 중사도 잃었다. 이타마르 중사는 가자 접경 파가 초소에서 전사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그제야 사건의 규모를 이해했다”며 “카라칼대대와 파란지역여단이 가자지구 남부 접경에서 하마스의 공격을 끊는 방어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장대원들이 목표한 모든 마을에 침투하지는 못했지만 주민과 지역 경비대원 사상자가 극심했다고 덧붙였다.

슈나이더 기자는 사건 수개월 뒤 탐사보도 프로그램 ‘우브다’가 샤예텟 13의 수파 초소 공격과 나할 정찰대대원 구출을 방송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특공대원 헬멧 카메라와 무장대원이 찍은 영상에 근거했다. 벤예후다 중령의 방어전은 방송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슈나이더 기자는 카라칼대대가 헬멧 카메라 등 장비를 갖춘 특수부대가 아닌 경보병이어서 진입과 LAW 발사 장면의 영상이 없다고 설명했다. 벤예후다 중령은 방송 누락에 대해 말을 아꼈고 전투를 기록하려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슈나이더 기자는 벤예후다 중령이 LAW로 무장대원 차량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수파 초소가 함락되고 공격이 다른 마을로 번졌을 수 있다고 적었다.

많이 본 뉴스